역사에 관심을 갖고, 다양하고 정확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
어릴적 우리집에는 ‘위인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도감이라 해서, 근사한 양장본의 책자는 아니고 전지 크기의 코팅된 종이였다. 그래서, 앞면에는 ‘한국을 빛낸 위인들’의 출생연도와 간략한 업적, 유명한 사건 등이 있었다. 그 반대면에는 대한민국(북한 제외한 남한)의 주요 도시별 문화재와 특산품 등을 소개하는 삽화로 구성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알파벳이 적혀있거나, 한글 훈민정음이 적혀있거나, 미니 천자문, 세계 지도 같은 코팅된 교육자료였다. 출처는 분명치 않으나 아버지께서 도서 전집을 구매하시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다. 지금 내가 ‘책 사는 버릇'은 아마도 아버지의 모습을 배운것 같다. 아버지는 월급의 전부를 들여 백과사전을 구매하신적이 있다고 했다. (읽을지 여부를 떠나) 책을 사는 버릇은 정말 비슷한 것 같다. 읽기 여부와 관계없이 책부터 사둔다는 것. 과연 아버지의 모습처럼 나도 과연 한달 월급을 전부 책사는데 투자할 용기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더 많이 샀을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방법이 달랐다. 한달 월급이 아니라 그 이상일수도 있고, 이하일수도 있는 신용카드를 통해서 구입했다. 회사를 방문하는 책장사에게 책을 사는 것도 아니고, 서점이나 인터넷 주문을 통해서 구입했다. (주로, 즐겨읽는 신문의 토요일자 책 소개 코너에서 알려주는 책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나 나나 굉장히 얇은 귀를 가진것은 맞다)
시리즈 책의 부록으로 받는 위인도감 덕분에, 나는 단군왕검부터 최규하 대통령까지의 우리 나라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는 달달 외우다 시피 했다. 누나와 형에 비해 나이 차이가 나다보니, 부모님께서는 누나따로, 형따로, 그리고 막내용 개별 도서 구매는 없었다. 초점은 대체로 아버지의 의식세계 중심으로 도서구매가 이뤄졌고, 누나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형보다는 높은 수준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글을 늦게 배운 나로서는 우리집에 있는 ‘위인전과 동화책'이 여간 어려울 수가 없었다. (글씨도 작았고, 그림도 없는 파브르 곤충기 같은 책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대여섯줄 밖에 안되는 위인도감의 내용을 갖고 위인전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시작은 단군왕검, 고주몽,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박혁거세, 김알지, 원효, 의상, 김유신, 이성계, 세종대왕, 고종황제, 안창호, 유관순, 이봉창 안중근, 김구, 여운형, 안익태, 김활란, 이승만, 장면, 윤보선, 박정희,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까지 족히 6-70명은 되보이는 인물들의 일대기를 훑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익과 좌익의 구분보다는 편집자의 시선에 초점이 맞춰진듯 했다. 여운형과 김활란, 장면과 윤보선 등이 골고루 언급된 걸 보면 충분히 짐작이 된다. 물론, 나는 오른쪽 왼쪽이 헷갈리던 시절이었다. (밥먹는 손 오른손)
위인도감을 떠올리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몇가지 난제가 있다. 첫번째, 그 인물들의 사진을 어떻게 구했을까? 일제시대나 조선말기의 경우 사진기술이 있었지만, 특히 단군왕검과 근초고왕의 사진은 어떻게 찾았는지는 정말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본 단군왕검 (위인도감에 나온 이름 그대로를 기재했다)의 모습은, 귀가 아주 크고 인상적이었고, 머리에는 족두리같은 왕관이 씌워져 있었다. 상의는 개량한복같은 것이었다. 두번째 놀라운점은, 출생비밀과 사망원인, 업적과 가족관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놀랍다. 충분한 역사적 고증을 통했거나, 다른 위인전, 혹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조선왕조 실록 등을 총 망라한 요약정리의 결정체였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랬기에 나는 집에 있는 다른 위인전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것 보다 위인도감의 내용을 베껴서 독후감으로 제출한 경우가 많았다. (방학숙제의 단골메뉴는 탐구생활이라는 큰 책자와 위인전 독후감, 일기쓰기 등이다. 나의 위인전 독후감의 단골 인물들은 거의 모두 위인도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군왕검의 얼굴을 짐작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웃던 일, 김유신의 말타는 장면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하며 신기해 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게 있다.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사진과 ‘친일파'의 사진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사진은 초라하고, 촌스러웠고, 어딘가 아파보였다. 하지만, 친일파의 모습은 정말로 세련돼 보였다. 넥타이를 메고, 수트를 입었으며, 중절모까지 갖춘 멋진 신사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요 고문 방식이나, 사망에 이르게 된 투옥 기간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왔는데, ‘과연 내가 그랬다면?’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걱정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는 날이면 독립운동 시기의 꿈을 꾸곤 했다. 정말 아찔하다. 내가 만약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과연 안중근처럼, 나는 과연 유관순처럼, 나는 과연 김구처럼 살 수 있을까? 또 다시 일제시대 꿈을 꿀까봐 걱정도 많이했다. 그 뒤로도 여러번 꿈을 꾼것 같지만, 꿈일 뿐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하지만, ‘나는 과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여전히 머리 속을 맴돌았다. 지금 나의 역사 지식은 1987년의 그것보다 훨씬 넓고 클 것이다. 하지만, 허름한 독립운동가와 세련된 친일파의 대비되는 모습은 짧은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보면, 짐작만 할 뿐이다.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의 결과는 인권은 물론, 본인의 목숨까지 걸어야만 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고, 당시 본인과 가족,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최선인지는 각자의 판단이다. 각자의 판단이라 하면 너무 미안한 표현이다. 역사가 판단하고, 후세가 알아야 한다. 존경받아야할 역사적 영웅들이다. ‘구국'이라는 목표 아래 노력하고, 고민하고, 심지어 행동으로 옮겨 실천에 이르게 되는 일들을 했던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좀 더 멋졌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1987년이 일제시대가 아니라서 너무 행복했다.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아서 참 좋다고, 독립군이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너무 행복하다고. 엄마는 그저 말없이 지긋하게 웃으셨다. 그러면서, ‘니가 지금 무엇을 하던,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바로 독립운동이고, 그것이 너와 가족들을 위한 일이야'라고 하셨다 (그런 뉘앙스였다)
비록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건강을 챙기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것이 행복이고, 기쁨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