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새로운 것은 늘 설렌다

도자기 8개월 차의 기록

by 또록



[새로운 도파민]


나오는 족족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물들.

이럴 때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손작업 방식으로, 안 해본 스타일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 너무 예쁘죠?"

밥을 먹다가 인스타 피드 사진만 보여줘도

어떤 식으로 작업하면 이런 느낌이 나는지 알려주시는 도자기 선생님.



나와 인연이 닿는 분들은 어찌나 이렇게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들인지.

내 최고의 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늘 이것저것 새로운 작업을 함께 해보자며 즐겁게 도와주신다.



[박지기법이 먼데?]



어쨌든 이번에 함께 해보기로 한 것은 박지기법이라는 것이다.

기물에 색깔 화장토를 도톰하게 칠한 뒤 원하는 모양으로 긁어내 그림을 만드는 방식이다.

파내는 것이다 보니 그림보다는 어릴 때 했던 고무 판화의 느낌이기도 하다.


테스트 그릇이라 작게 시작해 보기로 한다.

흙을 평평하게 밀고 틀을 이용해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덧 입힌다.

긁어낼 수 있도록 충분히 물감이 마르면 준비완료다.



긴 형태의 그릇이라 어떤 그림을 표현할지 꽤 오래 고민했다.

그러다가 꼬리가 긴 족제비나 담비의 형태가 예쁠 것 같았다.

물론 뱀 종류도 길지만, 접시 위의 뱀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맛이 떨어진다.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긁어내기 시작하니 형태가 나오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60315_220305758_05.jpg <생각보다 깔끔하게 떨어지진 않은 화장토>



처음으로 도전하는 기법이라 재미는 있지만 또 실패할까 하는 막연한 불안도 있었다.

이번마저 또 실패하면 포기가 빠른 나는 흥미도 빠르게 잃게 될 것을 안다.


실패했던 무광유약까지 바르고 가마에 넣는다. 이제는 기다림만이 남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

여러 가지 흙으로 자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흙 위의 로즈마리]


다양한 시도의 하나로 나뭇가지를 이용한 접시도 만들었다.

가지치기 후 버려진 로즈마리 줄기를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이용해서 무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홈에 물감을 떨군다.


KakaoTalk_20260315_220305758_03.jpg <잎을 조금 떼어낼 것을, 너무 과하다>


작업하는 내내 내가 좋아하는 로즈마리의 향이 날 미소 짓게 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게 모두 모여있는 공간이었다.


따스한 해가 들어오는 시간, 로즈마리의 향, 말랑말랑한 흙, 그리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까지.

더할 나위 없는 시간들이었다.



[구워진 굽굽 흙덩이들]


그렇게 가마에서 나온 새로운 시도들과 지난번 무광실패로 투명유약으로 만들어본 소금단지.

꿀단지라고 써뒀지만 실제론 꿀이 아닌 소금정도밖에는 넣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KakaoTalk_20260315_220305758.jpg <섭섭한 꿀벌을 올린 뚜껑>



꿀단지고 소금단지고가 뭐가 중요하겠나 싶다. 귀여우면 그만 인 것을.



또한 빈티지한 느낌을 살려보겠다고 괜한 색칠로 망쳤던 키걸이까지 이번엔 깔끔하게 나왔다.

새로운 시도들과,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재시도들.



KakaoTalk_20260315_220305758_02.jpg <취향 탈 듯한 키 걸이>



이제 실패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걸 다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실 이건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어릴 때부터 포기가 빨랐는지 뭔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멈추거나, 새롭게 시작했다.

재도전이나 틀렸던 것을 고쳐 잡아 수정하는 것은 유독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젠 도자기 배운 지 8개월 차.

주 2회 수업이긴 하지만, 벌써 60번의 공방 방문이라니.

이젠 중급자 정도는 되었으니, 나도 조금은 도자기 어른처럼 행동해야지!


KakaoTalk_20260315_220305758_01.jpg <박지기법으로 완성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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