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내며 글 쓰는 게으른 사람의 소모임
다행히도 인간은 입체감을 느껴야 할 감각기관을 두 개씩 가진다. AR, VR, 이머시브 관련 기술들을 보더라도 좌우 시각 정보에 차이를 두어 연출된 공간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양귀로 들려오는 소리의 거리차 시간차 음량 차 음질의 차이 등으로 인해 인간은 스테레오 서라운드와 같은 기술이 의미 있게 되었다. 이렇듯 재 구현되는 입체감의 근본엔 인체의 적절한 구조 덕분이라는 점. 그러면 잠시 과거로 소급하여 언제 사람이 입체로 듣는 것에 대해 눈을 떴는가 라는 것인데 아마도 파리 만국박람회 때의 일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전화기의 송화기와 수화기를 두대씩 준비하여 송화기는 공연장의 양끝에 하나씩 두고 어느 정도 떨어진 다른 공간에 위치한 청취자는 수화기 두대를 양귀에 대고 들은 것에 기인한다. 지금 상상해 보더라도 수화기로 들려온 소리는 마치 공연자에서 실제 음악을 즐기듯이 각 악기의 위치 구분이 어느 정도 되었으리라 본다. 중요한 건 입체감의 재현이었다. 시대야 흘렀지만 여전히 입체기술들은 끊임없이 각고의 노력들을 한다. 어떤 경우는 원음(?)의 충실한 전달 혹은 충실한 공간감의 전달은 잊은 듯 정말 새로운 유사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대단하다. 사람의 귀는 두 개뿐인데... 귀가 5개나 7개 혹은 22개쯤 달린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기술들도 있다. 여하튼 공간을 충실히 재현하고 연출하고 콘텐츠를 만끽할 수 있도록 이러한 모든 장치에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지 모르는 게 있다. 우린 왜 입체감 공간감에 매료되거나 열광하거나 소구 되는가 라는 것이다. 일본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실험이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악 청취 부스를 만들어 잠시 휴식을 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물론 이 부스 안에는 어쿠스틱 메이커 측에서 설계한 음향 장치들이 들어가 있었다. 휴식 중에는 음악 효과들이 들리게 끔 되어 있었는데 과연 청취자들을 어떤 소감을 느꼈을까. 소리에 휘감겨 있는 듯한 느낌이 매우 편안했다. 또 너무 평온해져서 잠이 들었다. 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무엇가에 전신이 휩싸였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아마도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원 체험과 관련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가는 물속에 둥둥 떠 있었고, 사람들의 소리들 음악 소리들에 서라운딩 되어 있었다. 아이에게 가장 평온함을 주었던 그 공간에 대한 원 체험의 기억이 돼살아났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인간이 공간감 입체감을 느끼기 위해 여러 기술들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은 좋은 공간감에 대한 변별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