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귀 사이 공간
일본 교토 소재의 KYOWA HARMONET 주식회사의 라인업 zero audio carbo 시리즈의 mezzo에 대해 소개한다. 외형적인 특징으로서 카본과 알루미늄으로 2중 구조 강화 바디를 디자인하여 이를 컨포지트 하우징 혹은 하이브리드 바디로 명명하고 있으며, 중저음 재생을 돕기 위한 베이스부스트 포트가 설계되어 있다. 또한 다이내믹형 드라이버와 신호 전송 효율을 위해 Oxygon Free Copper 케이블을 활용한다. 96kHz/24bit이상의 음원을 지칭하는 하이 레졸루션 마크 인증이 된 모델로서 재생 주파수 대역이 6Hz~40,000Hz 인 점도 기대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에이징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수일에 걸쳐 다양하게 사전 시청을 해본 결과, 솔직하게 뻗어나가는 고음도 좋지만 적절한 탄력감을 가지는 저음부도 나름의 매력이랄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시골 청년이랄까… 전체 대역에 걸친 바디감도 느껴지며 강한 듯 하지만 싫지 않고 강압적일 것 같지만 끈적대지 않는 저음부에서의 쿨함도 느껴진다. 고음부의 서스틴도 귀를 잡아당겨주는 개성이 있으며 물론 이 역시 경쾌함이 느껴지는 섬세함이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에이징 과정임을 고려하면 당연히 변곡점이 많기에 다양한 장면들에 조우하는 것도 이어폰 시청의 백미랄 수 있겠다. 아무튼 코스트 퍼포먼스를 고려하면 메조만의 표현력과 깔끔한 사운드는 소구력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은 포인트이다. 부디 취향에 너그러운 주인을 잘 만나 에이징 과정을 거치면 순박한 시골청년(?)에서 세련된 도시 남자(?)스럽게 연출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번 zero audio carbo 시리즈의 mezzo 리뷰에 사용된 음악은 필자의 애청곡인 바렌보임 지휘의 베토벤 심포니 교향곡 7번 1,2악장 그리고 사단법인 일본음악스튜디오협회 제28회 NHK기술교류회에서 녹음된 HIGH RESOLUTION 음원(384kHz 32bit), TOMA & MAMI with SATOSHI의 하이 레졸루션 음원, 그리고 재즈 보컬리스트 CHIE AYADO의 BEST 앨범 수록곡과 MURAKAMI PONTA SYUICHI의 WELCOME TO MY LIFE 앨범 수록곡을 레퍼런스 곡으로 활용하였으며 재생 디바이스는 Astell & Kern의 AK380이 사용되었다. 물론 사용자 환경을 고려하여 YOUTUBE에서 샘플을 선별하여 메조의 성능을 체험해 보았다.
필자가 바렌보임의 베토벤 심포니 7번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렌보임은 해설이 있는 연주처럼 악보의 메인 선율을 가시 바르듯 명확히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조로 이 작품을 들으니 그 메인 선율이 더 또렷하게 들렸다. 배경 선율 앞에 위치한 주제 음악의 선율을 잘 분리해서 들려준다. 가성비 좋은 물건이라는 기분 좋은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하며 듣다 보니 좋은 첫인상 뒤의 노력의 흔적은 역력하지만 아쉬움들을 만나게 된다. 배경 선율 안에 포함되는 여러 악기군들 각각의 선율이 가지는 경계가 잘 안 느껴진다. 그저 배경 선율로 뭉뚱 그려져 들려온다. 공간감 역시 느껴지지 않아서 오픈된 야외극장의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각 악기군들이 원형경기장에 서로를 바라보고 둘러앉아서 연주하는 듯 들릴 때도 있다. 정돈되고 일관성 있는 사운드의 느낌보다는 열정과 의지로 덜 다듬었다 해도 일단 담아낸 것 자체에 군배가 기우는 듯한 사운드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전경 중경 후경의 오버랩으로 인해 청자의 위치가 묘연하다. 내가 무대 앞에 있는지 중심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메인 선율의 또렷함은 마치 클래식 채널에서 카메라로 일일이 잡아주는 주제 악기군들의 앵글의 선명함처럼 참 친절하다는 느낌이다.
메조로 들은 고음질 재즈 앙상블 연주는 참 재미있는 영상을 보는 듯했다. 앙상블 연주 중 메인이 되는 악기가 등장할 때마다, 마치 연주자를 잡은 화면이 오버랩되어 등장해서는 화면의 이쪽저쪽으로 음악을 따라 흘러 다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무대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전환 기법이 많이 들어간 연주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메인 악기의 연주는 언제나 배경 악기 앞으로 나와있다. 마치 주제 선율임을 잘 보여주려는 듯 각 악기들이 앞서거니 뒷 서거 니를 반복 한다. 그래서 재즈 보컬의 연주에서는 강세를 보이는 듯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메인인 보컬이 언제나 앞에 서 있기 때문인데, 배경 선율이 되는 악기는 절대 보컬을 넘어서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배경 선율이라 해서 무조건 그림자처럼 흐린 것이 아니다. 반주 악기인 기타의 고유성이 당당히 보컬 뒤에서 강한 지지자로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보컬의 연주가 더 돋보이게 들린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청자의 위치는 묘연하다. 무대감을 느끼기 어렵다. 같은 공간에 있긴 한데 어디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건지... 그러니 공연장의 느낌보다는 성능 좋은 헤드폰으로 다져진 음악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강점으로 K-pop과 유튜브의 음원들을 감상해 보았다. 보컬의 선명함 뒤에 배경 선율들과 악기들의 적절한 배합이 좋다. 그래서 보컬이 빛난다. 하이 레졸루션의 재생 범위를 망라하다 보니 보컬의 윤곽이 예리하게 조차 느껴진다. 어떤 보컬의 음반은 양 사이드로 들어오는 보컬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가수의 목소리가 더욱 매력 있게 들리기도 했다. 사실 합리적인 기대를 가져야 하지만 좋은 첫인상으로 마주하게 되다 보니, 공간감 있게 들리는 음악을 찾을 수는 없었다는 표현을 굳이 하게 된다. 케이팝 음악의 반주 악기들 대부분이 전자악기임을 고려해볼 때, 입체적인 가수의 음성 뒤에 그냥 종이그림이 걸려있는 느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실만을 들려주는 기계의 정직성으로, 메조가 그런 안타까운 배경 음악의 질을 높여주지는 못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보컬의 중심성을 확실하게 해주는 장기는 잘 보여준다.
하여 필자는 메조의 특징을 음악 해설자라고 정리해 본다. 주 선율을 언제나 앞에 세워서 들려주고 배경 선율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주 선율 뒤에 두기 때문에 음악이 ‘쉽게 들려온다’. 그래서 음악의 단적인 이해가 쉽다.
하지만 이런 쉬움 뒤의 아쉬움이라 하면, 섬세함을 감지하기 어렵다는 것과 배경 선율 속에 참여한 악기군들이 많아질 때는 각각의 개체성을 들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요점 잡히게 들려주는 재주가 좋아서 가성비의 가치로 인기가 있을 제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