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귀 사이 공간
일본을 대표하는 음향기기 메이커 포스터 전기의 FOSTEX TE04에 대해 소개한다. 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주된 특징으로 다이내믹형 드라이버에 CCAW 보이스 코일과 네오듐 마그넷을 적용하였으며 Oxygon Free Copper 케이블을 사용하여 음성 신호의 전송 품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번 FOSTEX TE04의 리뷰에 사용된 음악은 사단법인 일본음악스튜디오협회 제28회 NHK기술교류회에서 녹음된 HIGH RESOLUTION 음원(384kHz 32bit), TOMA & MAMI with SATOSHI의 하이 레졸루션 음원, 바렌보임 지휘의 베토벤 심포니 교향곡 7번, 그리고 재즈 보컬리스트 CHIE AYADO의 BEST 앨범 수록곡과 MURAKAMI PONTA SYUICHI의 WELCOME TO MY LIFE 앨범 수록곡, 그 외 국외 POP 음악들과 K-POP가수들의 음원을 샘플로 활용하였으며 재생 디바이스는 Astell & Kern의 AK380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번 제품에 대해서는 사용자 환경을 고려하여 YOUTUBE에서도 앞서 언급한 음원들과 유사한 장르의 것들을 청취하였다.
먼저 바렌보임이 지휘한 베토벤 심포니 7번의 1,2악장에 대해서 논한다. 바렌보임의 오케스트라 배치는 독특하다. 보통은 나란히 옆에 앉히는 제1,2 바이올린을 양 사이드로 확연히 분리하고 그 사이에 저음현인 첼로와 바로 그 뒤에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중음현인 비올라를 둔다. 이 배치로 얻어지는 음향효과를 좋아하는 바렌보임은 그 효과를 톡톡히 내며 곡을 운영한다. 그런데 TE04는 바렌보임의 오케스트라 배치도를 들려주는듯하다. 아니 보여주는 듯 하다랄 수도 있다. 왼쪽 드라이버에서 제1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그 뒤의 콘트라베이스의 울림이 서로 섞이지 않고 연출된 그 위치에서 들려왔다. 오른쪽 드라이버에서는 제2 바이올린과 중음현인 비올라가, 그리고 중앙부에 위치한 목관악기의 울림이 각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고스란히 배치도를 따라 울린다. 잘 정돈(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어떻지 모르겠다)된 소리가 보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보통 이 작품을 들으며 함께 작용하는 이모션에 일렁이는 필자는 이것을 통해서는 그런 동화를 느끼지 못했다. 마치, 연거푸 몰려오지만 절대 해안선을 넘어서지 않는 파도처럼, 모든 소리와 음향은 절대 어느 선을 넘어서 오지 않았다. 흥분해도 이성을 잃지 않는 철저한 이성주의자처럼, 청자인 필자를 휘감아 정신없이 휘두르지 않았다. 음악 전반을 단아하게 들려주는 TE04. 전체 소리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만큼만! 한 귀 사이즈만큼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음악 전반이 단아하게 들린다. 결코 필자를 휘감지 않는다.
다음으로 TE04로 재즈 앙상블을 들은 필자는 흥미로운 것 하나를 경험했다. 보통 이어폰들 대부분은 무대 중앙 또는 무대 정면으로 청자를 모시는데, 이것은 무대 측면에 청자를 세워두는 느낌이었다. 연주자들의 음악이 나가는 방향의 측면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주변의 리듬 악기들은 주로 왼쪽 드라이버에서, 주선율을 맡는 악기는 오른쪽 드라이버에서 나온다. 무대 옆에서 매니저처럼 연주를 즐겨보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이어서 들어본 재즈 보컬의 음원도 인상적으로 감상했다. 넓지 않은 바에서 보컬 가수를 바로 앞에 둔 자리에서 음악을 듣는 듯했다. TE04는 무대 오른쪽에 보컬이 서 있게 했다. 재즈 앙상블에서는 확연하게 주선율 악기가 오른편 드라이버에서만 나와서 재즈 보컬에서는 어떻게 사운드가 다르게 분배될지 궁금했다. 분명 반주 악기인 기타도 주선율을 노래했고 그래서 오른쪽 드라이버에서 연주되고 있었지만 보컬 앞을 앞지르는 일이 절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대등하지 않은 음악적 지위를 지키는 연주였다.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감이 확보되어서, 보컬이 노래 부르며 만드는 호흡에 따른 프레이즈 보다 더 큰 음악적 프레이즈를 더 잘 느끼게 된다. 고음은 오른편에서 저음은 왼편에서 공명하며 계속 맴도는 울림으로 여운을 만들었다. TE04의 장점에 집중하려는 우회적 혹은 반어적 표현을 살리려는 필자의 느낌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K-POP과 유튜브의 음원들은 대부분은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이것”은 청자를 무대 정면 연주로서 음악을 들려준다. 코러스가 나오는 경우는 반드시 양편으로 정위감을 살려 나누어져 들리고, 무대 가수는 언제나 무대 중앙에서 노래하게 한다. 저음 악기와 타악기는 왼편에 두는 경향이 있었다. 저음질이라 생각되는 음악도 퀄리티를 잊고 음악을 듣게 해주었다. 정돈되고 안정적인 소리의 전달이 공통된 특징이었다.
필자는 여러 음원들을 통해 TE04의 특징을 찾으려 꾀나 고심했다. 공통된 느낌이라면, 정돈되고 안정적인 소리였다. 음원의 음질에 관계없이 우리 귀에 적합하게 소리를 깎고 차단하여 들려주는 느낌이랄까.. 마치 공기청정기만 있으면 어느 지역을 가던 적절히 필터링된 공기를 누리는 것처럼, “이것”은 소리 청정기 같은 필터링을 가진 특징이 있어 보인다. 고음의 날카로움을 깎고 저음 악기의 무턱대고 울려대는 잉여의 울림도 적당히 마모시킨다. 냉철한 이성의 필터로 커트당한 잔향들이 덜 들리기 때문에 어떤 장르의 음악도 한 귀 사이즈로 술술 들어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을 두루두루 듣는 취향에 환영받을 이어폰이란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