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이어폰 이야기
Sennheiser가 약 3년 반 만에 새로이 선보였던 하이엔드 이어폰 IE 900이 작년 6월 발표되었는데, IE 900은 2017년에 출시된 바 있는 IE 800S 모델을 대체하는 최상위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젠하이저의 보도 내용에 의하면 IE 900의 디자인은 Sennheiser가 만들어내고자 했던 재생 특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소리에 최적화되도록 디자인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아마 이 제품의 음향 구조적 특징인 resonator chambers를 하우징 내부에 구성하는 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resonator chambers
몇 가지 채택 기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E 900의 사운드를 구현해 내게 한 것의 핵심에는 X3R 기술이 있는데 이는 음향 기술에서 제조 과정상의 품질 관리 전 과정에 이르는 총칭이랄 수 있다. X3R의 자의는 광대역을 의미하는 X((Extra Wide Band)와 three Helmholtz resonator chambers를 의미하는 3R로 조합되는 표현인데, 3R은 드라이버의 진동판과 사운드 노즐 구간에 배치된 트리플 챔버 업소버 시스템이라 불리는 음향 구조를 가리킨다. 개발에만도 2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또한 독자적으로 개발한 7mm 다이내믹 드라이버인 TrueResponse 트랜스듀서에는 내부 손실과 소재 진동을 고려한 진동판을 채용하여 불필요한 공진과 왜곡을 최소한으로 억제한다고 한다. 또한 IE 900의 소리에는 5kHz 전후의 음역 보상을 위해 보이스 코일을 경량화를 목적으로 보다 가볍게 설계했다고 한다. 세밀한 코일을 사용하여 감긴 코일의 횟수를 늘려 10kHz 이상 고음역의 퍼포먼스를 향상했다. 자기 회로에는 네오듐 자석을 사용하였고, 진동판은 드라이버를 가볍게 하기 위해 코팅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랜스듀서와 노즐 사이 구간에는 triple resonator chambers라 불리는 세 개의 홈을 만들어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여 주파수 대역의 레스폰스를 향상해 마스킹과 왜곡을 억제하였고 acoustic vortex를 통하여 자연스러운 소리의 확산을 만들어 내어 청취자의 귀로 밀어 내게 된다고 한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대단함의 집약이다.
IE 900의 소리
자 그러면 이제 타협을 일절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는 IE 900의 소리로 들어가 보겠다. Sennheiser IE 900은 각 음역대 간의 새로운 밸런스를 선보인다. 각각의 음역대의 독보적인 완성도가 어떻게 더욱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 사운드 재생 능력으로 들려주는 실력자의 등장이랄 수 있다. 감탄과 칭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IE 900의 매력에 몰입하여 젖어 있던 시간들로부터 헤어 나와 이성을 곧게 세우고 리뷰 전 과정의 소감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제 IE 900의 음역대별 사운드를 먼저 정리, 아니 칭찬 극찬을 시작해보자.
IE 900의 저음역대
IE 900의 저음역대는 명료함이라는 갑옷을 입은 힘센 장비(삼국지의 영웅)와도 같다. 밀도감과 탄력 좋은 저음 선율들이 저음 악기 간의 모호함이 아닌 명료함으로 흐르고 있고, 그 저음 선율들이 타악기들의 타격감과 깊이 있는 울림들의 파동을 타고 더욱 세력을 키우며 거대한 장수의 모습을 구축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음악에서든 음악 안에서 기반을 갖추어주는 저음의 단단함은 기운 센 장사와 같고, 저음 저변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파동들은 발가락 끝까지 전달이 될 정도이다. muddy하지 않으면서도, 곡 전체의 쿠션이 되어주는 저음의 양감 역시 아주 훌륭하다. 킥 역시 과도하게 공격적이지 않지만 20대의 젊은 심장만큼 매우 건강하게 뛴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저음으로서 받을 칭찬을 모두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표현하면, 밀도 있고 두터운 저음 라인 그리고 극저음의 선율까지 모두 섬세하게 표현해 내면서 그 선율들 간의 간격을 유지하기에, 분리력 있게 그 라인들까지 살리는 실력을 어렵지 않게 들려준다. 사실상 저음역대의 새로운 지표를 열어버린 듯하다.
IE 900의 중음역대
IE 900의 중음역대는 세련미와 중후함을 겸비한 귀족과 같다. 각 악기들의 기본음들이 각기 고유한 소리들을 가장 고귀하게 숨 쉬듯 노래한다. 고음으로도 저음으로도 그 어느 쪽으로도 응어리지거나 치우침 없이 따뜻한 음조로 이야기하듯 선율을 이어낸다. 곡의 해상도는 여유 있는 최상급이지만, 눈부심 없는 중후한 따뜻함이 있어 인접 대역의 소리를 중심에서 매끄럽게 이어준다. 그건 전체 밸런스를 맞춘 중음역대의 자리 지킴과 IE 900가 가진 중음역대의 모호하지 않은, 분리력과 조화력이 가진 균형의 증거일 것이다.
IE 900의 고음역대
IE 900의 고음역대는 보고 또 봐도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은 종일 보고픈 가을 하늘과 같다. 어떤 제품이든 고음역대의 아킬레스건인 치찰음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두고 개발사는 각고가 있을 것이다. IE 900은 도대체 어디에 감추었는지, ‘치찰음이 뭐예요?’라는 얼굴로 고음역대가 자유로이 노래한다. 없다. 흔적도 없다. 듣고 또 들어도 새롭다. 청취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 높고 높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높은음들인데, 치찰음이 온데간데없다. 그러면서도 품위 있는 직진성을 갖고 잘 제어되어 이리저리 고음 선율들이 날아오른다.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곡선과 휘감음을 보여주는 선율들이 표현력 넘치게 활강을 한다.
IE 900의 무대
이 정도의 실력이면 IE 900이 무대를 어떻게 재현할까 기대가 커진다. 시음해보지 않고도 감이 오시겠지만, 무대의 재현이 아니고 단언컨대 라이브다. 실황이다. 로얄석 중에 로얄석이다. 현악기 주자들이 길게 활을 당겨내는 활력 넘치는 팔꿈치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이고, 가벼운 보잉을 하며 활의 누름을 조절하는 유연한 손목의 놀림도 보이는 것만 같다. 연주자들의 음악에 몰입한 호흡에 따라 필자 역시 깊게 호흡하고 숨을 참으며 음악에 빠져들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보컬은 입술의 팽팽함, 성대의 조여옴과 느슨함의 반복, 그리고 힙과 복부에서 시작된 호흡이 나오는 공기의 양마저 느끼게 해주는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연주자들의 테크닉과 연주의 섬세함을 눈으로 보듯 듣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실 극찬을 받아 마땅한데, 또 한 가지 반드시 스포 하고 싶은 IE 900의 장기가 있다.
IE 900의 현장감
현장감을 놀라울 정도로 재현하는 뛰어난 정보 전달 능력이다. 그 정보라 함은, 악기의 상태, 조율 정도까지 다 들려주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연 녹음에서 믹싱, 마스터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음악을 이해하는 이가 했는지 아니면 그저 오퍼레이터가 했는지에 대해서까지 낱낱이 들려준다. 필자는 지난 여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연주를 꽤나 즐긴 편이다. 선우예권의 연주 영상들에 등장하는 모든 스타인웨이가 다 같은 악기가 아님을 IE 900가 알려주었다. 관리가 의심스러운 상태의 악기도 있었다. 필자가 선우예권에게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중략) 동급으로 여겨지는 타제품들과 비교 청취를 해봐도 동일 조건에서 동일한 영상을 봤을 때 분명히 더 들린다. 대단히 잘 잡아내어 표현해 내고야 마는 이 세밀함은 진심으로 뛰어나다. 그리고 유튜브로 즐기는 쇼팽 콩쿠르 연주 영상들에서 연주자들마다의 다이내믹을 만들어가는 테크닉의 디테일, 마음의 커튼을 열어주는 뉘앙스 표현법, 그리고 저마다의 호흡법까지, 거기에 금상첨화로 그들이 선택한 피아노들마다의 특징도 다 듣게 되었다. 음악 감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매일 조금씩 봄을 부르는 겨울 저녁 하늘에, 마음껏 붉은 물감을 여러 색 짜 놓고 마구마구 붓질하듯 따스한 노랫줄기가 퍼져가던 Sennheiser IE 900와의 시간을 감사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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