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헤드폰 이야기
전 세계 500대 리미티드 에디션이니 최고급 가죽이니 원목 하우징이니 하는 모든 미사여구를 다 내려놓고,
audio-technica ATH-L5000의 사운드 성향을 (가산점 없이!) 정직하게 들어보고자 한다. 먼저 고음, 중음, 저음역대를 고려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여 각 음역대에서의 성향을 정리할 예정이며, 그리고 나서 무대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사운드를 어떻게 만져서 내보내는지를 분석해보고, 강점을 정리하여 궁합이 좋을 음악 스타일도 찾아보고자 한다.
audio-technica ATH-L5000
고음역대에서의 ATH-L5000은 자신 있는 고음을 곱게 내뿜는다.
고음이 자신 있게 들린다는 것은 고음의 선명도에 더해 힘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고음의 표현력에는 해상력이 좋기만 해서는 채울 수 없는 ‘고급스러움’의 난제가 늘 있는데, 이 제품은 고음에 힘을 가세하여 이 문제를 해결한 듯하다. 너무 얇지 않은 적절한 두께의 고음에 힘을 실어 사방으로 내뻗는 활기가 있다. 그리고 날카롭지 않은 고음의 직진성에 볼륨을 계속 높여가고 싶은 욕심도 내게 된다. 고음이 자신 있게 뿜어져 나오니 색채감도 좋게 들린다. 그런데 고음역대의 여러 음악을 돌려 들으며 고음역대에 힘을 실어주는 비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바로 중음역대였다!!
ATH-L5000의 중음역대는 한마디로 기립해서 “부라보”다.
고음역대에 대한 자신감은 바로 밑에서 넓게 받쳐주고 지탱해주고 커버해주는 중음역대에서 나온다! 볼륨을 높여갈수록 고음역대의 한계와 치부는 드러나기 마련. 하지만 중음역대가 그런 고음에 더 밀착해서 화려한 기교를 보여준다면 음악은 더욱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상적인 사회구조로 두터운 중산층을 지향하듯, 음악에서의 이상적인 두께의 중음역대 양은 음악 전반의 밸런스를 좋게 하고, 고음과 저음 간의 괴리감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관광지에서 핵심이 되는 명소와 명소를 이어주는 길, 그 길에 빽빽하게 들어선 가게들의 볼거리 덕에 관광의 맛을 한껏 더 즐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ATH-L5000의 증음역대에 반해서, 고음역대에 가려진 중음들의 존재감을 속속들이 찾기 위해, 해묵은 음악들까지 모두 꺼내어 들어보았다. 고음의 그늘에 가려져 지나쳤을 숨은 소리를 찾아서?! 그래서였을까... 고음역대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고음역대에 있는데, 중음역대가 너무 훌륭해서 귀의 집중력이 중음역대로 쏠리는 느낌. 이렇게 즐겨 듣던 음악들 속 숨어있고 가려진 중음역대 사운드들을 낱낱이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동시에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인이어나 헤드폰 제품들이 주인공 살리기 또는 분위기 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중음역대가 이리 탄탄한 제품으로 음악들을 다시 만나보니, 빛나는 조연의 눈빛 연기와 입술의 씰룩임이 주인공의 예쁜 얼굴과 훌륭한 무대 세팅만큼 가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느낌이다. 고음을 서포트하고 저음을 견인하는 역할을 넘어, 중음역대 존재의 당위성을 확실히 들려준 귀한 만남이다.
중음역대가 이리 탄탄한 제품으로 음악들을 다시 만나보니, 빛나는 조연의 눈빛 연기와 입술의 씰룩임이 주인공의 예쁜 얼굴과 훌륭한 무대 세팅만큼 가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느낌이다.
ATH-L5000의 저음역대는 중음역대의 파워에 가려진 아쉬움이 있다.
중음역대에 가까운 저음역대의 악기들, 선율들은 선명함과 힘이 돋보인다. 하지만 저음 밑바닥에서 샘솟아야 할 에너지는 애써 귀 기울이고 찾아야 한다. 알아서 늘 강하게 들려주는 베이스 파워의 약함에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베이스의 파워마저 메울 수 있는 중음의 탄탄함과 다채로움에 음악은 신나게 흘러간다. 그래도 저음 마니아로서, 베이스의 탄력성과 심장의 박동수를 제멋대로 조종하는 비트감 멋진 음악들을 평범하게 흘려듣게 되는 것은 아쉬움 그 자체이다. 관현악 대편성 작품들에서도 타악기들의 존재감이 좀 멀리 있는 편이다. 최저음 선율들이 대체적으로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중음역대의 선명함과 화려함, 구체성에 비교하면 저음역대는 소홀해진 느낌이라고 결론 내리려 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저음역대의 파워와 울림들이 특정 음역대(중저음역대)를 늘 잡아먹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음역대와 저음역대 사이에 있던 음들의 선명도와 힘을 생각해보면, 저음이 다 약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 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그리고서 음악을 차근차근 다시 들어보니 지나쳤던 중저음역대가 모두 힘 있게 최선을 다해 들려오고 있었다. 이 음역대를 저음으로 치지 않았던 나의 편견까지 지적해 준 모델, ATH-L5000이다.
저음이 다 약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 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그리고서 음악을 차근차근 다시 들어보니 지나쳤던 중저음역대가 모두 힘 있게 최선을 다해 들려오고 있었다.
ATH-L5000의 무대 형상화 능력을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VVIP 고객을 위한 특설무대 만들기라고 하겠다. 어쩌면 리미티드 500대 한정 제품에 대한 편견에서 온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ATH-L5000가 들려주는 음악은 일반인들이 공연장을 찾아가서 듣는 음악과는 좀 다른 무엇이 있다. 현장을 벗어났기 때문에 음악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생동감을 잃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수준이 높고 최선을 다한 음악이다. 공연 무대가 거침없이 한눈에 들어오고 스테이지도 깊고 넓다. 다만 커다란 공연장이 주는 에어감, 높은 천장에 부딪히는 반사 그리고 잔향감, 담배연기 자욱한 밀폐감들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 그러니 분명 특정 타겟 고객을 위해 만든 고급 무대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현장감을 찾기보다는 음악의 본질로 접어들게 하며 새로운 무대를 조성해주는 느낌이다. 무대가 넓고 깊기 때문에 답답함이 없고, 디테일한 중음역대의 활약 덕에 입체적인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고급 고객을 위해 저돌적인 고음과 저음은 이미 차단되어 있음으로, 안심하고 무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현장감을 찾기보다는 음악의 본질로 접어들게 하며 새로운 무대를 조성해주는 느낌이다.
ATH-L5000의 사운드 성향을 정리하면,
탄탄한 중음역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고음역과 저음역의 조화라 할 수 있겠다.
중음역대의 양은 나에게는 역대급이다. 그래서 고음과 저음의 조화력을 더욱 높이면서, 고음에게는 확실한 서포터로 저음에게는 확실한 견인차로 활동한다. 중음역대의 해상도가 놀랍도록 좋고, 그래서 색다른 디테일감을 느끼게 된다. 색채감에 있어서는 고음역대만 부각되는 제품들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움이 덧입혀져서 다채롭다. 공들여진 중음역대 덕에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온기감 있고 윤기 있게 들린다. 그러면서도 음의 속도감이나 리듬감이 둔해지지 않는다. 고음의 적극적인 표현력이 깎이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입었다. 이것이 중음역대의 힘이 아니겠는가! 다만 무겁고 어두운 톤이나 질감 표현에서는 다소 서툴다고 해야 할지, 삭제당했다고 해야 할지.. 애매함이 있긴 하다. 그래서 나는 ATH-L5000으로 음악을 만난다면, 퍼커션과 저음역대가 강조되는 EDM 보다는 중음역대와 고음역대의 조화로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이라면 무엇이든 보물을 찾을 마음으로 들어볼 것이다. 돋보기를 귀에 끼워 주 듯 음악 속에 중음역대의 세밀화를 즐기게 될 것이다. 하여 모든 음악에 대한 탐험심을 자극하는 ATH-L5000은 음악에 적이 없다.
돋보기를 귀에 끼워 주 듯 음악 속에 중음역대의 세밀화를 즐기게 될 것이다.
300석 비행기에 퍼스트 클래스 좌석은 9석, 전체의 3%라고 한다. 나는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퍼스트 클래스 좌석의 편안함과 서비스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 좌석에 앉아 먹는 컵라면은 별맛일 것 같고, 그 좌석에 앉아 내려다보는 하늘은 별천지일 것 같다. 우스운 착각이지만 그것이 퍼스트 클래스 좌석의 힘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리미티드 500대에 고가라는 태그는 ATH-L5000로 듣는 모든 음악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단순히 착각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가산점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들어보면, ATH-L5000의 강점인 중저음역대의 단단함은 우리의 소유욕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조연이지만 중견배우들의 농후한 연기로 예쁜 주연의 미숙한 연기를 커버하 듯, 음악의 빛나는 조연인 중저음의 가치를 읽어주는 모델이다. 백화점에 전시되어 있는 체험 바디 안마기에 다들 앉아서 잠깐의 호사를 즐기듯, 기회가 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고 ATH-L5000으로 중저음역대의 호사를 꼭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조연이지만 중견배우들의 농후한 연기로 예쁜 주연의 미숙한 연기를 커버하 듯, 음악의 빛나는 조연인 중저음의 가치를 읽어주는 모델이다.
제조사 제품 설명 웹페이지
https://www.audio-technica.co.jp/product/ATH-L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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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제조사 상품 페이지와 본 원고의 기고 매거진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