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헤드폰 이야기는 Beyerdynamic DT 880
Beyerdynamic DT 880
DT(dynamic telephone) 시리즈는 오랜 세월 beyerdynamic 헤드폰 제품의 중심적 존재였다. DT 시리즈의 기원은 19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Eugen Beyer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DT48이었으며 2012년 말까지 75년간 사용된 바 있다. 좋은 것을 만든다는 beyerdynamic의 모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1980년대 중반, 전설이 된 DT770、DT880、DT990의 원형이 판매되었으며 현재의 고성능 모델인 DT770 PRO、DT880 PRO、DT990 PRO는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녹음 스튜디오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라인업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수작업하는 점도 경쟁력이라 생각된다. 이번 리뷰는 초기 모델의 유전자를 계승하는 라인업 중 하나인 Beyerdynamic DT880 BLACK EDITION인데 레퍼런스 헤드폰인 점을 고려하여 평소와 다른 관점으로 시작을 해보고자 한다.
DT 시리즈의 기원은 19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늘 맛집 탐방은 유행이다. 내가 생각하는 맛집의 조건이 있다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찾는 식당이라는 타이틀이다. 지역 맛집을 찾는 식객들은 원조라는 간판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지역 주민만이 알고 인정하는, 진정한 원조의 맛을 맛보고 싶기 때문에 먼 걸음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조의 맛을 경험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2가지 접근이 있을 것 같다. 시작부터 원조의 맛으로, 또는 유사한 음식을 먹어본 경험들을 바탕으로 원조의 맛을 찾는 것이다. 후자인 경우는 원조의 맛을 보고 2가지 반응으로 나뉠 수 있다. “역시 원조다” OR “이 맛이 원조야?”
한국인이 좋아하는 평양냉면. 하지만 원조 평양냉면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가? 집 근처 회사 근처에서 찾아다니며 먹었던 평양냉면은 원조 평양냉면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맛. 이 원조의 참맛도 모르며 혀 전체에 전율을 주는 동네 맛에 감탄하며 ‘평양냉면’에 엄지 척을 날리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원조 평양냉면을 두고 음식평론가들이 “무(無)에 가까운 순수하고 정직한 맛”이라 극찬했다. 북이 고향이신 어르신들은 이 은은한 맛의 원조 평양냉면을 먹으면 두 눈에 눈물이 고이실 것이다. 그 의미를 생각하여 혹자는 밍밍한 맛의 의미를 깨닫고자, 그 후에도 몇 번을 도전하여 음식평론가들이 말하는 순수하고 정직한 맛을 터득하여, ‘자신도 원조 평양냉면의 맛을 아는 사람’으로 등극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마트에서 파는 평양냉면도 즐긴다.
레퍼런스용 제품과의 만남도 이와 같지 않나 싶다. 각종 기교를 부리는 인이어 제품에 길들여진 귀에 레퍼런스 헤드폰을 처음 들려주면, 원조 평양냉면의 맛과 같은 사운드에 어리둥절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오디오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원음에 충실한” 레퍼런스 제품을 추천하는지도 모른다. 가미가 덜 된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소리 맛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운드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공된 능력자들로 오디오 세계에 몸담은 분들에게도 레퍼런스 제품을 필자는 권하고 싶다. 자신이 즐겨 듣는 음악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답지와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즐겨 듣는 음악의 실체의 확인이라는 발견의 즐거움도 있으니 말이다.
가미가 덜 된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소리 맛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운드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레퍼런스 헤드폰의 대명사 Beyerdynamic DT880의 사운드를 들어보자. 레퍼런스 제품의 강점인 ‘플랫한(평평한) 음’을 평가 중심으로 잡고, DT880은 각 음역대를 어떻게 구현하는지 먼저 논해 보겠다.
저음역대
DT880은 극저음이 얼굴을 많이 내밀지는 않지만 존재감 있게 음악의 벽을 발라준다. 전반적인 저음역대가 무례하지 않게 당당한 행보로 음악 전반에 대한 움직임을 들려준다. 극저음의 거리감 있는 포지션 덕에 저음역이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다만 저음역대의 기름기가 빠져있기 때문에, 저음에서만 느껴지는 깊은 탄력성, 펀칭력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보통 저음역대 보컬리스트의 몸매에서 기대되는 울림통이 DT880에는 없다. 이것이 저음역대를 플랫하게 만들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DT880의 저음역대는 적절히 몸매가 관리된 단단한 사운드가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저음이 빈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저음의 양감은 음악 전체에 밸런스 있게 조절된 정도로, 지나침이 없을 뿐이다.
중음역대
여러 리뷰 제품들을 들으며, 중음역대가 얼굴을 내밀고 안 내밀고에 따라 같은 음악이 완전히 다른 이미지가 됨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마치 트렌치코트에 허리띠를 두르고 안 두르고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나 할까. 하지만 DT880 PRO의 중음역은 음악이 달리 들리게 하는 특색이 없다. 그렇다고 있으나 마나 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의 역할은 하고 있다. 저음역대 위에 자리하며 고음역대가 너무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이랄까. 이런 무(無) 개성 중음역대 덕에 DT880의 음악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연결성이 좋다. 그리고 복잡함을 덜어낸 느낌이고 순박함을 느끼게 한다.
고음역대
레퍼런스 제품들로 고음을 듣다 보면, 답답함이 귀에 낀다. 뭔가 속 시원하게 터지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이미 사운드 조미료에 길들여진 귀인 것이다. 고음역대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는 기술을 가진 제품들로, 가공된 고음을 들어온 우리는 원음의 사운드가 성에 안찰 수밖에 없다. 뭔가 못 미치는 느낌. 하지만 이 안타까움에 집중하다 보면 플랫한 고음의 매력을 놓칠 수 있다. 레퍼런스 제품으로 플랫한 고음들을 듣고 있노라면 효과를 뺀 정직한 고음 실력을 듣게 되고, 가공되지 않은 정직한 표현력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DT880은 의외의 고음 실력자다. 직진성이 꽤나 저돌적이고 표현력과 표정도 제법 가진 끼 있는 제품이다. 당연히 플랫한 레퍼런스 제품들 안에서의 칭찬임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레퍼런스용 제품으로 무대를 보겠다고 기대하면 욕심이 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레퍼런스 제품들에서는 입체성이라던지, 공간감, 해상력과 같은 면에 있어서 재가공 내지는 재연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레퍼런스 제품으로 유튜브를 즐긴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뉴스 같은 정보성 음악을 듣게 될 테니 말이다. (감동은 없고 정보 전달만 되는 음악 말이다) 레퍼런스 계열의 제품은 매칭이 중요하다. 어떤 기계, 어떤 음원과 만나냐가 중요하다. 플랫한 음의 충실성으로 음원들의 민낯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DT880은 그런 레퍼런스 제품들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제법 무대감을 갖고 있다. 일단 비교적 해상력이 좋기 때문에 색채감과 개방적인 공간이 만들어지고, 직진성 있는 고음역대의 움직임으로 밋밋하지 않고 화려한 무대가 형성된다. 그리고 중음역대의 무개성으로 인한 부드러움이 곡 전체의 온기감에 기여한다.
오디오 세계에 입문을 하는 분이든 이미 몸을 깊이 담근 분이든, 레퍼런스용 제품의 유용성은 이미 익히 알 것이다. DT880은 명성만으로도 믿고 사는 제품이지만, 레퍼런스 제품의 가치에 좀 더 얹어진 노력을 찾아볼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 싶다.
https://europe.beyerdynamic.com/dt-880-black-special-edition-250-ohm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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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 원고의 기고 매거진인 오디오파이와 베이어다이내믹 개발사 웹사이트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