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여섯 시부터 부스럭거림이 시작된다. 그 소리는 곧 나더러 일어나라는 신호다. 나는 남편의 아침 준비를 도와야 한다. 혈당을 재고, 유산균과 콜라겐을 챙겨 주며, 달걀과 빵, 단백질 음료까지 식탁에 올려놓는다. 헬스장에 가져갈 작은 물통까지 채워 주고 나면 비로소 한숨 돌린다. 하지만 이 의식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가끔은 지치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어깨가 아팠다. 안 좋은 자세로 물건 나르고 일을 해서인지 둘이 아픈 부위도 같았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운동을 하라고 권하는 바람에 얼결에 온 헬스장이다. 지금은 붙박이가 돼 버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헬스장을 간다. 제일 처음 하는 몸 푸는 털털이가 의사보다 낫다. 의사도 못 고치는 어깨통증을 싹 낫게 하였다. 아침시간에 고정적으로 오는 헬스멤버가 있다. 대부분 나이가 많다. 아침잠이 없으니까 일찍 오는 모양이다. 남편은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다. 두세 명과 특히 친하게 지낸다. 그중 한 사람은 있는 척 허세 부리는 그분, 또 한 사람은 아파트 회장님이란 직함이 있다. 세 사람은 정기적으로 밖에서 점심도 하면서 돈독해지고 있다.
그분은 혼자 산다. 그래서 남편과는 더 자주 밥을 함께 먹는다. 하루는 아침 준비를 다 마쳤는데, 남편이 밥 먹으러 간다고 한다.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을 고스란히 냉장고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짜증이 슬그머니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남편을 따라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마침 그분이 타고 있었다. 나는 농담 삼아 “저도 밥 먹으러 따라가요” 하고 말했다. 그런데 대뜸 “집에 쌀이 없어요?” 하고 빈정거린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인가. 반갑게 “같이 가요” 한마디 해도 안 갈 걸 알면서, 왜 꼭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분도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농담에도 통용되는 범위라는 게 있지 않을까.
‘집에 쌀이 없느냐’는 그 말이 자꾸 마음속에 맴돈다. 아마도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베갯머리송사감으로 남을 것 같다.
그분은 땅도 많고, 곳곳에 빌딩도 있다고 한다. 남편은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다 믿는 사람이다. 좋을 때는 무슨 말인들 안 믿을까. “ 아이고! 부자라서 좋겠습니다.” 하고 추겨 세워 준다. 회장 아저씨는 그런 말을 허세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순진하다고 한다. 그분은 남의 속사정 이야기는 들으면서 자기 속사정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한다. 비밀을 품고 사는 듯하다. 있는 척은 독으로 하고 아니꼽기도 하다.
작년에 그분과 특별히 잘 친한 덕에 남편과 나는 항노화 특산물 축제에 놀러 갔다. 그분도 그곳에 잠시 머문다고 했다. 남편은 평소 친구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새로 사귄 친구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둘이는 갑장이다. 남편은 들떠서 그분 한테 전화를 한다. 이곳에 왔노라고. 무미건조한 전화 속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파서 못 나간다고. 헐! 이럴 수가. 남편의 꺼뻑 죽는 믿음 한 꺼풀 벗겨 내야 한다.
헬스장 바닥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러닝 기구 앞에는 더 지저분하다. 짜증이 난다. 뭐 이런 게 다 떨어져 있나. 그렇게 몇 날을 보내고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분의 러닝화가 헤벌레 덜 그 덕거린다. 부스러기들이 걸을 때마다 떨어진다. 자기가 흘린 부스러기를 치우지도 않는다. 또 어느 날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운동을 한다. 바닥에까지 땀이 떨어질 때도 있다. 곳곳에 글귀가 붙어 있다. 자기 땀 청소는 자기가 처리하라고.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보름에 한 번씩 헬스장 바닥을 닦고 있다. 먼지가 날리면 운동할 때 안 좋다고 부지런을 떤다. 그분은 신발이 다 떨어져도 본인이 좋아해서 못 버린다고 한다. 무슨 애착 신발이라나 뭐라나. 그러면 수선하여 신으라고 남편이 말한다. 어느 날 아침, 그분은 러닝화를 남편 앞에 툭 던지듯이 놓는다. 가서 수선 좀 해 오라고 한다. 자기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다고 한다. 그런 신발을 수선하러 가는 남편은 안 부끄러울까. 숨죽여 사태를 지켜본다.
남편이 한마디 한다.
“ 일하러 가는 사람한테 시키지 말고 하루 종일 노는 사람이 가서 고쳐 신어야지 ” 한다. 남편이 이런 말도 할 줄 안다. 좋아서 꺼뻑 죽는 줄 알았더니 다시 이성을 찾았나. 의아하다. 강도는 좀 약하지만 잘했다고 속으로 박수를 쳤다. 짝짝짝! 속된 말로 자기가 땅 부자면 누구한테 막 시켜도 되나.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말이야! 나도 속으로 한마디 했다. 후련하다. 평소에 그분의 있는 체함이 나를 자극했나 보다. 집에 쌀이 없냐니 그게 말이가 소리가.
그분이 신발을 수리해 신고 왔다. 냉랭하다. 남편도 가타부타 말을 건네지 않는다. 서로 처음 본 사람인 양 상관없이 운동만 한다. 그런 날이 계속 이어진다. 그게 뭐 별일이라고 친한 척을 하지 않을까 싶다. 가짜 친함이었나. 요즘 세상은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도 가짜 같을 때가 더러 있어서 가늠할 수가 없다. 그분은 회장님과 이야기한다. 큰소리로 쩌렁쩌렁하게 말을 한다. 너털웃음을 웃고는 한다. 누구 들으라는 듯이. 남편은 그런 허세에 넘어가지 않는다. 무엇이 남편의 심경을 건드렸는지 모르겠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또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몰랐던 처음으로 간 것도 아니고 알면서 친한 것도 아니다. 헬스장 들어올 때 “안녕하세요” 의례적인 목례만 하는 사이가 되었다.
초록이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이 있듯이. 나는 남편 편이다. 그래서 남편의 이런 행동이해는 한다. 하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싫다. 그렇다고 친해서 꺼뻑 죽는 그런 것도 싫다. 셋이서 친한 척 먹는 점심도 깨져 버렸다. 세상일에 평정심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분의 모든 행동이 귀에 거슬린다. 무게를 한계치까지 올려서 헬스기구를 꽈당 소리 내는 것도 짜증이 난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도 듣기가 싫다.
나는 남편한테 속닥거린다. 헬스 에티켓도 없다고 저런 헐떡거리는 소리 듣기 싫어서 이 시간에 같이 못 오겠다고 했다. 나와는 다르게 둘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운동을 한다. 둘 다 멘털이 강한 건지 허세가 강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이 운동 마치고 나간 후에 헬스장을 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분위기에 나만 멘털이 약한가 보다. 나도 허세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