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오래도록 있는 기억
|Ginkgo biloba Linnaeus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종
|고생대부터 지구에 있다
친구네 회사 앞으로 같이 점심을 먹으러 놀러 갔습니다. 예전에 일했던 회사와 같은 그룹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라, 예전에 일했던 회사를 지나갔습니다.
사실 일부러 그 회사 근처를 한 번 걸어보려고 한 것은 맞는데, 나도 모르게 예전에 출퇴근했던 지하철 출구로 나가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습관이 무섭다고 하더니 이것은 몸에 밴 대로 저절로 움직인 것인지, 일부러 기억을 되짚어가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거의 십 년만인데, 이대로 걸어 나가면 옛날의 시간과 공간이 다시 펼쳐지는 것은 아닐지 긴장되었습니다.
햇살 밖으로 나가자 처음 보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낯선 것에 대한 안도. 사실 그 시절엔 너무 고통스러웠던 일이 많아서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이 길을 따라 올라온 것은, 입안의 상처가 얼마나 쓰라린가 계속 혀로 쓰다듬는 것과 같은 것일까요.
여기에 무엇이 있었는데, 여기 서서 누가 어떤 말을 했더라... 어느 날 나는 이 앞을 걸어가며 이런 생각을 했었지. 한 걸음마다 기억들이 피어올랐습니다. 눈부신 햇살을 핑계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걸어갔습니다. 다행히 가게들, 건물들, 심지어 길 까지도 많이 바뀌어서, 너무 가라앉지 않고 새로운 곳에 여행온 기분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지나온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회사 건물 앞의 라일락과 나무의자가 예전과 다름없이 있었고, 나무 옆에 앉아 웃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언덕을 따라 늘어선 키 큰 은행나무들과 그 길을 따라 산책했던 일도.
나의 괴로웠던 옛 기억은 낡은 건물에 두었고, 작은 웃음들은 나무에 매어 놓았었습니다. 이제 허물어지고 없는 것들은 서서히 잊어버리겠지요. 아픈 기억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때가 없었던 것처럼 모두 잊을 필요는 없겠지요. 나무들만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어서, 또 언젠가 희미한 웃음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은행나무가 먼 옛날부터 사라지지 않고 지구에 서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은행나무에 기억을 매어놓은 수많은 존재들의 바람이 은행나무를 지켜주고 있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