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feat. 지나영 교수님, 유튜버 신사임당)

by 찾는 마음


최근에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의 소아정신과 교수인 지나영님의 세바시 강연을 보았다. 한국의 가난한 집안 둘째 딸로 태어나서 미국 최고의 의대로 손꼽히는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의 교수님이라니 입지전적인 분이시다. 그렇게 화려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던 중 갑자기 원인 모를 질병으로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된다. 자율신경계 장애와 CFS(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진단이 후에 나왔지만 이것은 진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모호한 것이다.


지나영 교수.png 지나영 교수님



자율신경계 장애란 정확히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고, CFS(만성피로증후군)은 병의 원인도 치료법도 아직 정확히 모르고, 다만 극심한 만성피로라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군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일 뿐이다. 만성피로라고 해서 단지 머리가 멍하고 몸이 무거운 정도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CFS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피로를 일컫는다.


교수님은 수차례의 최첨단 검사를 하고 나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2년 가까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극심한 피로로 고통받으셨다고 한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세계 최첨단 의료를 자랑하는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에서도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지 못했을 때의 황당함과 절망감이 얼마나 크셨을까? 원래는 공중 곡예에 에베레스트산 등정까지 하실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다고 한다.


필자도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CFS(만성피로증후군)로 고통받았다. 인생의 황금기를 투병으로 허비한 셈이다. 중고등학교의 학창 시절 동안 극심한 만성피로와의 사투가 늘 함께 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날이 매일 이어지니 증상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지나영 교수님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학교는 다닐 수 있었으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었고, 언젠가 회복하리라는 희망도 길어지는 투병 기간 앞에 절망으로 변해갔다. 주변의 선후배들의 사법고시 합격 플래카드가 사방에 걸릴 때 고향에서 요양을 하는 것이 다였던 시절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그리고 결국 사법고시의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의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CFS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없었다. 의사들이 줄 수 있었던 건 기약 없는 희망일 뿐, 고통의 터널 끝 빛은 보이지 않았다. 의지가 꽤 굳다고 생각했던 나도 결국 우울증과 극심한 불안증까지 겪었다. 지금은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 못지않은 에너지로 현재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나영 교수님은 아직 완치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하니 동병상련의 안쓰러움과 함께 존경심이 일었다. 내가 아플 때는 오직 나 자신의 고통밖에 신경 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나영 교수님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고 계신다.


교수님은 누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교수님의 기사에 거짓말이라고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믿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나는 교수님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교수님은 아프고 나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과 그를 통한 성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하셨다.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정말로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한다.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므로 어떤 일을 해야 한다거나, 남을 실망시키지 않고 욕먹지 않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귀하다는 것이다. 또한 전에는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매진했으나,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고 싶다고 하신다.


그런 댓글을 단 사람은 인생의 행복이 건강과 물질적 성공에만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건강은 소중하다. 나도 전에 건강을 잃어봐서 알지만 건강이 없다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남지 않는다. 또한 물질적 성공은 장래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고, 아끼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며,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주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 준다. 건강과 물질적 풍요는 너무나 중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정신적 깨달음과 성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교수님은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신체적 안락함과 쾌적함,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공허한 상태라면 이러한 조건들이 행복을 기약할 수 있을까?


유튜브의 인터뷰나 책에서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했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증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큰 성공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편안함, 쾌락 속에서 왜 그들은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심지어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유한 재벌들 중에서도 자살을 비롯한 갖가지 비극이 일어난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신사임당 1.png 구독자 170만 명에 재산이 100억이 넘는 자산가 된 유튜버 신사임당(왼쪽)과 인터뷰하는 유튜버 염미솔(오른쪽)


신사임당 1-2.png 돈많은언니 유튜브 채널에서 인터뷰 중인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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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신사임당은 자신의 꿈의 성취나 재산에는 행복이 없었고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복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정이 계속되도록 다음 목표는 이루기 어렵게 터무니없이 잡을 예정이라 함. ^^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도 쉽게 적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아무리 큰 성공이나 시련에도 쉽게 적응하는 존재다. 거대한 성공도 이루었을 때 잠시 기쁘지만, 곧 익숙해져서 성공 자체가 주는 행복은 지속되지 않는다. 사고로 팔다리를 잃는 큰 고난을 겪은 사람들도 1년 정도 지나면 주관적 행복감은 다시 사고 전 보통 수준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간의 적응력은 무서울 정도다. 객관적인 환경이 우리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은 한계가 있는 듯하다.



우리는 돈으로 많은 쾌락을 살 수 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차, 큰 집,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등 신체적, 정신적 쾌락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쾌락은 한계가 있다. 특정한 쾌락에 익숙해질수록 같은 강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내가 처음 뷔페 음식을 먹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황홀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잦아지고 나니 어느새 뷔페의 감동은 그리 크지 않게 되었다.


쾌락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하지만 지나친 쾌락의 탐닉은 쾌락을 파괴적으로 만든다. 마치 마약처럼, 같은 강도의 쾌락을 맛보기 위해서 필요한 투여량은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쾌락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다.


아름다움을 인정받는 데서 오는 쾌락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과다한 성형수술로 외모를 망쳤던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유명 인사들 중 술과 마약, 도박, 섹스 등의 말초적 쾌락에 탐닉하다 파산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망치고 재활 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건 좋으나 지나치게 탐닉하면 비만과 성인병으로 건강에 위협을 받는다. 쾌락은 적당히 즐길 때 삶의 즐거운 동반자이지 끝을 보겠다고 집착하면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허기진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쾌락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지나치게 추구해서 좋은 쾌락도 없다.


반대로 우리는 고통을 싫어한다. 될 수 있는 한 인생에 별 시련 없이 편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온실 속에 화초가 약하게 자랄 수밖에 없듯이 시련이 없는 편안한 삶에서 성장을 하기란 쉽지 않다. 안락함이 보장된 환경 속에서 굳이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지려 할까. 나무도 비바람을 맞고 자라야 튼튼하고 강인해진다. 물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성장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것이 물질적 성장일 수도 있고 신체적 성장(운동 기록을 향상한다든가 덩치를 더 키우는 등) 또는 정신적 성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사람은 성장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본다.


컴퓨터 게임이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게임 속에선 통제된 환경 안에 개인의 성장은 보장되어 있다. 각종 미션을 거치며 캐릭터의 레벨을 계속 높이는 데서 사람들은 쾌감을 얻는다. 현실에서는 원하는 것처럼 성장이 안 될 수도 있고, 처절하게 실패하여 회복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감은 게임에선 거의 없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거의 확실히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맛보지 못하는 성장의 기쁨을 게임 속에서 찾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나도 오랜 투병 기간을 통해 인생에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많은 기회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련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도 사실이다. 원래 나는 삶에서 오직 쾌락을 추구하며 정신적인 삶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스타일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쾌락의 기쁨은 순간적이고 쾌락에서 오는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다.


그러나 정신적인 성장에서 오는 평화와 은은한 기쁨은 지속적인 행복감을 준다. 하루하루 뭔가를 깨치고 배워가며 성장하는 기쁨은 안락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삶에서 즐거움이든 고통이든 어떠한 사건도 성장할 기회로 보고 기꺼이 수용하고 가르침을 얻는다. 삶이 (시디신) 레몬을 주면 나는 불평하지 않고 그 레몬을 가지고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는 마음이다. 이것은 마음의 선택이다.


순간적인 즐거움은 사라지나 정신적인 성장은 남는다.


교수님은 "삶에서 모든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나를 위하여 일어나는 일이다(Everything is happening For you, not To you)."라고 말씀하셨다. 삶은 이런 의미에서 축복이다.



https://youtu.be/tTIBdaze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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