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과 다른 존재인가?

by 찾는 마음


요즘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데 어렴풋이 진화심리학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주장은 사뭇 도발적이었고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들과 다름이 없고 인간의 고등한 본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진화를 통해서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부분이 발달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즉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심리 기제(마음의 작동 방식)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한 인간들은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여 많은 자손을 남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 기제가 유전을 통해 자손에게 물려진다.



원시 인류



현대 인류는 생존과 번식의 전쟁에서 승리한 조상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이다. (왜냐하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심리 기제를 가지지 않은 조상들은 일찍 죽거나 자손을 많이 남기지 않아서 그들의 유전자는 도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리한 조상들의 심리 기제가 유전자에 실려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는 본성은 그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동물보다 그리 탁월하거나 고등할 것은 없고 단지 생존과 번식에 유용한 것이 채택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만 고유한 심리적 특성도 없다고 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심리적 특성을 부분적으로 다른 동물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문화, 언어, 도구 사용, 도덕성, 연민, 동정, 연민, 낭만적 사랑, 동성애, 살인, 강간 등이 부분적으로 공유된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많은 심리적 문제들은 우리가 현대의 문명사회의 빠른 발전에 심리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 조상들은 100만 년 동안이나 수렵채집인들로 살아왔고 그 기간 동안 별다른 큰 자연적, 문화적 변화가 없었기에 점진적 진화에 의해 심리 기제를 천천히 발달시켜왔다. 그런데 단지 8000년 전 농업이 발명되면서 빠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농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기에 집단의 규모가 수렵채집인들 보다 훨씬 커져 도시가 탄생했다. 그리고 먹고 남은 농업의 잉여생산물의 축적과 거래를 통해 일부의 인간들은 노동에서 해방되어 지식과 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문자의 발명, 산업혁명, 컴퓨터의 발명 등 인류사의 큰 혁신을 겪으며 인간 지식의 축적과 발전은 기하급수적이 되었다. 지난 20년간 발견된 과학 정보의 양은 언어가 생기고 나서 그때까지 축적된 정보의 양보다 더 많다고 한다.



지식의 폭발적 증가



이러한 정보의 폭발적인 증가에 비해 우리의 본성은 아직 수렵채집 시대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진화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현대 문명의 변화는 너무 급속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수렵채집 시대 원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서 없었던 존재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우리 뇌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진화심리학자 가나자와 사토시는 '사바나 법칙'이라고 불렀다. 아마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것에서 착안한 듯하다.



물론 인간 행동은 유전자를 통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으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와 환경이 같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은 그동안 학계에서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 과소평가해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은 백지와 같아서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느냐에 따라 본성이 결정된다는 인간 본성의 '빈 서판설'이 오랫동안 학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2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진화심리학에 이르러서 환경 못지않게 타고난 본성(유전된 심리 기제)의 영향도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의 주장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인간을 지능 높은 동물로 보는 시각과 대부분 행동의 주요 원인을 생존과 번식에서 찾는 것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불편하다고 진실이 아니라 매도할 순 없다. 어떻게 인간 본성을 동물급으로 끌어내릴 수 있느냐고 분개할 수도 있지만, 인간 사회의 현상을 어느 정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다면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능의 사생활'이나 '욕망의 진화'같은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지만 인정하는 사실 중 하나가 결혼 시장에서 남자는 지위나 경제력, 여자는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인정하기는 불편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리라. 고매한 인간의 품성으로 설명되기는 어려운 현상이지만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된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과 번식이다. 결혼 시장에서는 번식이 초점이 된다. 여자가 남자의 지위나 경제력을 중시하는 것은 단지 비싼 옷과 큰 집을 선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출산하고 장기간 양육을 해야 하는데 이는 남자의 지위와 경제력이 보장되었을 때 더 용이하다. 자식을 기르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자식을 별 탈 없이 장기간 기르기 위한 모성의 선택으로 해석한다면, 높은 지위와 경제력이 풍부한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의 성향을 마냥 매도할 수는 없다.



남성들이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도 그냥 본능이라고만 여겨왔는데 이것도 진화심리학은 명쾌하게 설명한다. 남성은 1차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자식을 생산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젊음과 아름다움을 원한다. 젊다는 것은 임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고, 외모가 아름답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건강함을 의미해서 자손을 출산하기 위한 더 바람직한 신체의 소유자임을 나타낸다.



얼굴이나 몸매가 좌우대칭적인 경우 보통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대칭적인 얼굴이나 몸매는 신체의 좋은 건강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신체 발달 과정에서 나쁜 환경의 영향이나 스트레스, 기생체 등이 신체의 비대칭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들이 다소 마른 체형의 여성이 인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남성들은 대부분 평균적인 몸매를 더 선호한다.



아마 심하게 마른 여성 체형이 패션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의 선호와 관계없이 마른 몸매 취향을 고수할지 모른다. 하지만 남성들은 몸무게와 상관없이 0.7 정도의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을 가진 여성들을 선호한다. 이는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임신의 가능성이 높은 몸매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선호는 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다기 보다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대 남성들이 의식적으로 임신 가능성을 기준으로 여성의 매력을 평가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종래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은 3~4세 이후에 문화의 영향에 따라 미의 기준이 전적으로 후천적으로 학습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3개월 된 유아들조차 매력적으로 평가받는 얼굴을 더 오래 쳐다봤고, 12개월 된 유아들이 매력적인 가면을 쓴 실험자와 더 즐겁게 놀이를 하며 몰입했다는 실험 데이터가 있다. 이는 미에 대한 기준이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임을 암시한다.



물론 진화심리학자들도 미디어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이상적 외모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미디어가 이상적 외모의 기준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이상적 외모의 기준을 이용한다고 여긴다. 극소수의 이상적 외모를 포토샵으로 엄청나게 수정한 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조작적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원래 선호하는 외모를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현대 선진국에서는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진화심리학의 동기인 생존과 번식에서 번식은 홀대받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환경의 강력한 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취가 중시되는 사회적 환경, 출산과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 경제 침체로 인한 높은 급여 일자리의 감소와 이로 인한 결혼의 감소 등이 맞물려 우리는 유전자에 새겨진 번식의 욕구를 거부하거나 포기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학문이고 실제 우리의 생활에 적용되는 부분도 많은 듯하다. 그러나 인간을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존재로만 규정하는 것은 상당히 한계가 있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나 애국자, 혁명가들의 심리를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진리를 추구하며 평생을 보내는 수도자나 종교인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지능의 사생활'이라는 책에선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진화적으로 적응된(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심리 기제에 위반되거나 진화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높은 지능이 진화적 심리 기제를 위반하게 만든다는 발상은 꽤 신선했다. 하지만 왜 높은 지능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동기 설명은 그리 명쾌하지 않았다. 하나의 틀로 세상을 모두 설명하려는 데서 오는 한계가 분명히 느껴졌다.



인간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메타인지이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옳은지, 내 판단이 정확한지에 대해 생각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만이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영성적 또는 철학적 물음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영성을 믿고 있는 나로서는 진화심리학은 다소 불편하고 충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았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체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고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동물적인 면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육체도 우리의 일부다. 종교의 근본주의자들 중에 육체의 욕망을 죄악시하고 육체는 영성 추구에 단지 걸림돌이라 여겨 육체를 학대하거나 무조건적인 금욕을 추구하던 종파도 있었다. 그러나 육체도 신의 창조물이고 우주의 일부이다. 그것을 더럽게 바라보는 것은 단지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오히려 현대는 육체에 대한 지나친 숭배의 경향도 보인다. 특정한 몸매나 외모에 대한 맹목적 미화나 추구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겪고 있다. 남성들이 영화 등의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엄청난 근육질의 슈퍼 히어로의 몸을 열망한다든지, 여성들은 패션모델이나 아이돌 가수들의 극단적인 마른 몸매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 등의 부작용이다. 극소수 사람들의 신체를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삼는 순간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의 몸은 기준 미달로 인식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정신적으로는 큰 폐해가 된다.





물론 그런 미디어의 자극이 적정선에서 건강한 몸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면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다. 운동을 시작하게 되거나 체중을 조절하여 건강을 향상하는 것 같은 예 말이다.



사람에 따라 육체와 정신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한쪽이 나머지 한쪽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육체와 정신 모두 중요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됨을 알고 있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것도 사실이고, 반대로 정신이 황폐한데 육체만 건강하기 힘들다. 당장은 황폐한 정신을 육체가 견딜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육체마저 정신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지기 쉽다. 정신과 육체 모두 우리를 구성하는 불가분적인 요소다. 어느 쪽도 소홀함 없이 잘 가꾸어 나가야 함은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진화심리학은 다소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발상도 많았고 타당하다 여겨지는 부분도 많았다. 나와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주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른가? 인간은 동물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면도 가지고 있다. 양쪽의 시각을 모두 가지고 인간을 바라볼 때 인간에 대한 균형 잡힌 견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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