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크게는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며 분석, 학습, 창작 등의 고도의 지적 기능을 할 때는 의식적인 마음이 작용한다.
그러나 하루 중 우리 생각과 행위의 대부분은 무의식적 사고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을 먹고 출근이나 등교하는 등의 일상적 행위에서 내리는 판단의 대부분은 자동적이다. 이 와중에 떠오르는 수만 가지의 생각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보수적으로 판단해도 우리 사고와 행동의 70% 이상은 무의식에 의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서 의식적인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무의식은 잠재의식이라고도 불리며 우리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먼저 결정을 내리고 뒤에 의식적으로 그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댄다고 한다. 우리가 내린 결론이나 행동이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라고 믿고 싶지만, 많은 경우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럴듯하게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자유 의지라는 것이 과연 우리의 행동의 주인인가라는 의심이 든다.
우리가 의식적이라고 믿는 행위조차도 상당히 무의식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것이 무의식에 의해 저절로 결정된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론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의식을 이용해서 무의식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도 있기에 모든 것이 운명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무의식을 움직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려는 시도조차도 무의식의 작용이 아닙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것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을지라도 운명을 모르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 결정하고 살아가야 하기에 운명론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운명론은 쉽게 포기하기 위한 변명거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의식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우리의 무의식은 부모님이나 조상으로부터 유전자를 통해 물려받은 부분과 개인의 경험을 통해 구성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또 융 같은 학자는 직계 조상뿐만이 아닌 전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개인의 무의식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인간의 뇌는 호흡, 심장박동, 혈압 조절 등 생명현상을 담당하는 뇌(파충류의 뇌), 감정을 담당하는 중뇌(변연계를 포함한 '포유류의 뇌'로 불린다- 포유류는 파충류와 달리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그렇게 불리고 있다), 복잡하고 고등한 사고와 창조를 담당하는 수행하는 전뇌부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서유헌 교수님의 '인체 기행')
인간의 뇌 발달과정도 진화의 단계처럼 파충류의 뇌부터 발달하고 그다음 중뇌, 그다음 전뇌부 식으로 발달한다고 한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마음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모님이나 조상으로부터 기본적 생명유지를 할 수 있는 동물적 본능을 물려받고, 부모님과 조상들의 삶의 경험으로부터도 갖가지 마음을 물려받았다.
진화심리학에서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심리 기제를 유전자를 통해 조상들로부터 우리가 물려받았다고 하니(이 부분은 저의 포스팅 '인간은 동물과 다른 존재인가?'를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부분이다. 또한 부모님의 성향이나 기질을 자식들이 물려받는 건 절대적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도 우리가 경험상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삶을 통해 겪는 여러 가지 경험에서 느낀 감정이 우리의 마음을 구성한다.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면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강이나 바다에 가면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어릴 때 강이나 바다에서 즐겁게 놀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강이나 바다에 가면 아련한 향수를 느끼며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잠재의식)은 파충류의 뇌와 (번연계를 포함한) 중뇌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트라우마가 있는 개인이라도 현재 물가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다시 죽음의 위기를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과 무의식이 싸우면 거의 항상 무의식이 승리한다. 의식으로 자신을 아무리 설득하려 하더라도 무의식의 힘은 너무나 막강해서 공포심 때문에 그 사람은 물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우리 인생 대부분은 이러한 무의식의 작용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무의식에 마음이 각인되는 원리는 감정이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큰 감정을 느끼지 않은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등교를 하거나 출근을 하시면서 또는 산책을 하시면서 보았던 수많은 장면 중에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먹었던 수많은 식사 중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외식이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식사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기억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기억이 남는 이유가 그 순간 느꼈던 강한 감정 때문이고 이것이 마음이 된다.
어릴 때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못 받은 사람은 평생을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쫓아다니며 결핍을 채우려 한다. 어릴 때 지독한 가난에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은 평생을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부자가 된 후에도 다시 가난으로 돌아갈까 봐 돈을 아끼기만 하고 잘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릴 때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인정 못 받은 서러움에 성장하여 큰 차, 큰 집, 좋은 옷으로 인정받으려 한다. 인정을 받은 사람조차 인정받았던 쾌감을 잊지 못해 재산과 지위를 추구하며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무의식이라는 자동 항해 장치에 올라타고 인생을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파충류가 운전하고 있는 차에 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가끔 포유류가 운전을 교대하기도 한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 대부분을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조종하는 무의식의 흐름에 맡기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돌아보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도마뱀이나 삽살개가 운전하고 있는 차에 타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의 방향타를 되찾으려 우리는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무의식의 흐름을 한 번씩 끊어주며 깨어나는 것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힘이 너무 막강하고 의식의 힘은 너무 미약해 보인다. 무의식에 맡기는 삶은 편안하고 의식적으로 깨어나려는 삶은 투쟁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렇게 애쓰며 살기에는 너무 지친 현대인들도 많다. 그냥 편한 게 좋은 거지 하며 되는대로 살다가 도마뱀과 삽살개가 교대운전한 내 삶은 공허나 절망의 종착지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내면의 아이는 무엇인가? 내면의 아이(inner child)란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환경으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속의 자아를 말한다. 그리고 내면의 아이는 성인이 된 개인에게도 여러 가지 행동의 동기로 작용한다.
내면의 아이는 왜 생겨났는가? 어린 시절 느꼈던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부모나 주변 사람의 강압 때문에 또는 그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억누르고 회피했기에 생겨났다. 감정은 그 순간 느끼라고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이 발생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고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받아들이면, 감정은 발생한 의무를 다했기에 저절로 사라진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갖가지 감정을 느끼고 그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과정이라면 (특히 이러한 견해는 인생의 목적을 의식의 성장으로 보는 영적 스승들에 의해 많이 설파되어 왔다) 우리는 그 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부인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인정하고 느낀 뒤 놓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감정을 부인하고 억누르면 그 감정은 해방되지 못하고 우리 안에 갇히고 만다. 그것이 계속 쌓이면 분노 장애나 우울증처럼 정신적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내면의 아이도 이러한 억눌린 감정으로 이해하면 쉽다. 내면의 아이는 심리학에서 출발한 용어이지만 요즘은 영적 추구를 하시는 분들도 폭넓게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내면의 아이는 어린 시절에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은 성장하고 늙어가지만 마음도 이에 비례하여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 내내 내면의 아이는 형성되어 가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안에 감정은 포용하고 인정해야 할 존재다. 하지만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는데 서투르다. 억누르고 회피하기 바빠 내면의 아이는 버림받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한가? 힘들어도 힘든 마음 알아주지 않고 자신이 나약하다고 질책하거나 애써 못 본 체한다. 특히 나 같은 한국 남자들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힘에 겨워도 강한 척한다. 인생을 온통 다른 사람인 척하며 정작 자신 안의 진정한 감정들을 외면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 결과 내면의 아이는 외롭고 버림받는다.
그러나 그 내면의 아이도 그냥 참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을 맞닥뜨리며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러한 경험이 있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안다. 우리는 내면의 아이를 달래주고 맺혔던 그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내면의 아이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고 '그동안 힘들었지?'하며 달래주고 인정해 주라고 한다. 그 상처 하나하나를 보다듬고 사랑해 주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나 서툰가?
잠재의식에 쌓여 있는 내면의 아이와 같은 수많은 상처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명상이나 묵상, 기도도 있고 감사일기를 쓴다거나 내면의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등 다양하다. 이러한 방법들은 훌륭하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면도 있는데 비교적 실천하기 쉽고 효과도 좋은 방법이 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다.
필자도 명상을 하거나 각종 영성과 관련된 서적을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의식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주목하게 된 것이 '호오포노포노'이다. 호오포노포노는 원래 고대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제 해결법이자 수행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그 마음을 일단 인정하고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 때문에 분노, 불안, 슬픔, 절망, 질투 등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온다고 생각하고 그 사건을 일으킨 상대를 비난하기 바쁘지만 대부분 우리 안에 억눌린 감정이 기회를 만나 분출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오면 정화하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한 마음이 있었구나. 또는 네가 ~하구나" 하고 그 감정을 인정하며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반복하여 말한다(머릿글자를 따서 '미용감사'로 외우시면 편합니다). 순서를 바꿔도 상관없고, 소리 내서 하든 마음속으로 하든 상관없다.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기에 단순히 반복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된다.
내면을 빨리 정화하고 싶다면 하루 종일 최대한 많이 습관처럼 되뇌면 좋다고 한다. 나도 요즘 열심히 틈만 나면 되뇌는 중이다.
아래에 이 호오포노포노를 통한 정화를 잘 설명하고 계신 클래스케이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링크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