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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소외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사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현대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 소외라는 말은 폐부를 찌르듯이 깊숙이 와닿는다.
옆집 이웃도 잘 모르거나 가끔 데면데면 인사하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은 요즘, 우리 현대인은 대부분 고독하다. 과거와 같은 마을 공동체나 씨족 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친척 관계도 더 이상 예전처럼 깊지 않다. 요즘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친척보다 더 끈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마을이나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소속감을 주지 못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접촉하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상대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평생 자신을 조건 없이 위해주는 친한 친구 2~3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핏줄에 더 연연한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내 가족이 최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관심 없고 내 가족만 챙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 가족마저도 상속 문제로 원수가 되거나 사소한 오해가 누적되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는 등 전적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세상에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자신밖에 남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 자신조차 조변석개로 마음이 변하고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동안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할 존재가 되어 간다. 이로써 개인은 완전히 고립되고 의지할 데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고통받게 된다.
물론 TV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개인에 따라 혼자 생활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수행자는 혼자 고독히 산속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나 같은 평균적인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본래 하나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고립된 고독한 삶이 그리 행복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자신의 안전을 찾을 수 있는 존재이다. 또 타인에 대한 기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존재다. 진화심리학적으로도 오랫동안 부족 생활을 한 우리에게 공동체에 대한 필요는 DNA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증거의 하나로 현대 사회에서 아직도 막강한 종교의 영향력을 들 수 있다. 예전보다 종교의 영향력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종교는 사람들의 초월적 욕망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소속감과 연대감을 준다. 종교 단체가 주는 연대감과 소속감, 조건 없이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환경을 교인들은 떠나기 쉽지 않다. 종교 단체 밖의 냉혹한 사회에서는 이러한 온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의 파편화가 가속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사람들의 극에 달한 열망을 일부 해결해 준 것이 SNS였다. 소셜미디어(SNS)는 현대 사회가 제공해 주지 못하는 소속감과 연대감을 온라인상에서 대신 제공해 주며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의 관계는 한계가 있다. 간접적인 접촉은 깊은 공감을 나누기는 다소 어렵다. 그래서 온라인상의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적인 대면과 접촉의 기능은 앞으로 메타버스가 발전할지라도 완전히 대체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원래의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람들의 이러한 연대의 갈망은 본능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같은 파편화된 사회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기계의 부속처럼 느끼게 만드는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이 물질적으로 풍요하나 그 어느 때보다 자살률이 높고 우울증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 것도 진정한 공동체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진정한 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각자가 소외된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상대의 의도가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자신만을 위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야 하고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피곤한 사회인가? 뒤처질까 봐 두렵고 속을까 봐 두려운 사회는 우리가 결코 꿈꾸던 사회는 아니다. 서로 믿고 서로를 진실로 아끼며 상대의 성공에 질투 대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꿈일까?
나는 우리가 언젠가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를 꿈꾼다.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해도 그런 공동체들이 모이면 우리 사회 전체를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때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지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꿈꾸는 사회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불신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 누구도 외롭지 않은 사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