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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Oct 19. 2022

잊혀진 자들의 전쟁 - 23.  끝과 시작

케이트는 갑작스레 나균의 손에 쥐어진 칼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나균의 몸속에서 폭발적으로 차오르는 에너지를 느꼈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에너지였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했다. 나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손으로 가슴에 박힌 수리검을 뽑아내자 끝이 부러진 채로 수리검이 뽑혀 나갔다. 그리고 몸속에 뿌리처럼 박힌 검의 칼날들이 녹아내리며 몸 밖으로 분출되었다.    


  

아비가일은 나균의 검을 보며 외쳤다.      



“발록!”     



그녀는 절대적 파괴력을 가진 마검 발록에 대해서 언젠가 고대 서적에서 묘사된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핏빛 마검은 지상의 모든 것을 제압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균을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며 나균의 두 눈이 붉은빛으로 불타듯 빛났다. 나균이 한 손을 뻗자 드레이크가 나균에게 끌려오기 시작했다. 드레이크의 촉수가 나균을 향해 날아갔으나 나균의 몸 가까이 접근하자마자 몸에 닿기도 전에 불타서 사라졌다. 그리고 드레이크의 몸으로부터 사방으로 피가 빠져나가 발록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발록은 마치 그물망처럼 드레이크의 피를 흡수하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나균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몸의 촉수를 사방에 박아 넣고 버티려 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드레이크의 목은 나균에게 붙잡혀 있었다. 드레이크의 피가 발록에게 흡수되고 그로부터 나오는 막강한 힘은 나균의 몸을 타고 흘러들었다. 



나균이 힘을 주자 드레이크의 목이 으스러지고 피가 모두 빨려 나간 드레이크는 마치 미라처럼 변하더니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나균의 얼굴이 변하고 있었다. 나균의 이마에서 왕관의 장식처럼 뿔이 치솟고 송곳니가 길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박쥐의 날개가 나균의 등으로부터 튀어나와 하늘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이때 멀린을 비롯한 고대의 신들이 나균을 둘러싸고 나타났다. 그들은 합심하여 거대한 푸른 번개를 나균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균의 거대한 박쥐 날개가 이를 막아내었다. 그리고 고대의 신들의 몸으로부터도 피가 빠져나와 발록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위험을 느낀 멀린은 몸을 피하려 했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멀린의 몸에서도 피가 빠져나가 발록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나균을 중심으로 한 소용돌이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멀린을 비롯한 고대의 신들조차 피와 에너지를 모두 발록에게 흡수당하고 한 줌의 재로 부스러져 갔다. 나균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에 천지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이미 나균의 모습은 하나의 거대한 흡혈귀였다.      



아비가일이 이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전설의 뱀파이어킹은 드레이크가 아니었어. 바로 나균이었어.”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빈스도 어느새 일어나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빈스의 눈도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도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광폭한 흡혈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흡혈귀들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왕이 각성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의 야수성이 이제 속박에서 벗어날 것임을 예감했다.      



케이트는 나균의 모습도 빈스의 모습도 두려웠다.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휘둘리는 것으로 보였다. 나균의 눈에 혜수가 들어왔다. 나균이 손을 뻗자 혜수가 어느새 나균의 팔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나균의 눈에 혜수의 희고 가녀린 목 위로 두드러져 있는 파란 정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혜수의 목에 송곳니를 박고 피를 빨고 싶은 강한 충동이 올라왔다. 그리고 피를 빨고 나면 혜수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 해도 지금처럼 천사 같은 혜수가 아니라 피에 굶주린 흡혈귀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나균은 깨달았다. 무한한 힘에 도취되어 폭주하던 나균의 정신에 한 조각의 이성이 눈을 떴다.     



‘이 힘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쉽사리 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균은 이제껏 맛보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해방감이 세상을 새롭게 보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머리 숙일 필요가 없고 어떤 두려움도 없는 절대자, 이 지상의 절대적인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환희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혜수를 파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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