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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일 Feb 27. 2023

그녀에게 배운 것은 사진이 아니라 꽃을 대하는 태도이다

꽃은 사랑하는 만큼 이쁘게 찍는다.

5년 만에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5년 만에 만났다.

그녀는 내 꽃사부인 금사매님이다. 

    

12년 전 DSLR 카메라를 샀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사진 동호회에 들어갔다. 첫 출사로 범어사에서 새를 찍었다. 사진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크롭바디에 기본으로 딸랑 달린 렌즈를 장착하고 갔다. 모두 대포 렌즈로 멀리서 찍었다. 내 렌즈로는 멀리서 찍는 게 어림없어 가까이 갔더니 새가 도망간다.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들었다. 완전 주눅이 들었다.

      

동호회 홈페이지에서 꽃을 찍고 싶다고 올렸더니 바로 댓글이 달렸다. 금사매님이었다. 그녀와 간 곳이 주전 황토전 마을과 어물동이었고, 변산바람꽃과 복수초를 처음 보았다. 이후 야생화 도감을 들고 다니면서 보이는 꽃마다 이름을 외웠다. 3년 정도 하니 웬만한 꽃과는 통성명하는 사이가 되었다. 

    

모처럼 찾은 황토전 마을이다. 산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한 쌍의 변산바람꽃이 마중 나와 있다. 바로 엎드렸다. 총을 쏘듯이 한쪽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춘다. 잠시 과녁에 집중하다가 셔터를 누른다. 금사매님은 무심히 계속 걷는다. 나는 여기저기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하얀 노루귀 한 쌍을 만났다. 몸을 꼬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하얀 잎 속으로 꽃술이 비친다. 역광에 솜털이 반짝인다. 노루귀는 꽃보다 솜털이 포인트다. 그런데 솜털에 초점을 맞추면 꽃이 흐려진다. 꽃과 솜털 초점을 함께 잡는 것이 어렵다. 꽃잎이 크기라도 하면 포기해야 한다. 다행히 이 녀석들은 꽃잎이 활짝 열리지 않았다.      

노루귀 한 쌍


멀리서 금사매님이 부른다.      

“지티님. 여기 오세요”     

금사매님은 꽃을 찾는데 도사이다. 꽃 사진은 좋은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수백 수천 송이 중에 마음에 드는 모델을 찾으면 나머지는 카메라가 알아서 한다. 그녀는 이쁜 꽃이 어디에 피는지 금방 찾는다. 꽃의 생태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부르는 곳으로 갔다. 돌 옆에 소복이 변산바람꽃이 있다. 바로 엎드렸다. 햇빛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그늘이 진다. 기다려야 한다. 얼마 후 햇살이 꽃을 비춘다. 다시 엎드렸다. 그런데 햇살이 꽃 뒤 낙엽까지 비춘다. 이러면 사진이 산만해진다. 한숨을 쉬고 있으니, 금사매님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지티님. 이제 찍어보세요.”     

그녀가 자신의 그림자로 낙엽이 받은 햇살을 숨겨버렸다.     


변산바람꽃

예전에 비해 이곳의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고 안타까와한다. 가장 빨리 변산바람꽃이 피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의 진사들이 찾았다. 사람 발자국이 꽃에게는 천적이다. 땅바닥을 보면서 조심조심 걷지만, 2월의 언 땅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꽃에게 못할 짓을 하게 된다.    

 

근처 어물동으로 옮겼다. 이곳은 복수초 천지이다.      

초입에서 만난 노루귀를 보면서 그녀는 말을 건낸다.


“애고,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꽃마다 말을 건다.     


“아이고, 이쁘다.”

“너는 며칠 더 있으면 이쁘겠다.”

“얘는 지금이 제일 이쁠 때구나.”     


누군가에게 밟힌 꽃을 보면     


“애고, 미안하구나.”     


그녀는 나의 꽃사부이다. 

내가 그녀에게 배운 것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꽃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에게 좋은 모델을 찾아주기 위해 멀찌감치 걷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또 부른다.     

“지티님, 여기 오세요”     

그루터기 안쪽에 살짝 복수초가 자리 잡고 있다. 

    

복수초

그녀는 60대 중반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공식 작가이다. 3월이면 방송통신대학 농학과 3학년이 되고, 곧 바리스타 자격증도 딴다고 한다. 하루 세 시간 정도는 경찰서 안전요원으로 동네 순찰도 다닌다. 


그녀는 나의 꽃사부가 아니라 인생사부이다. 휴대폰으로 몇 장 찍을 뿐, 어깨에 맨 카메라 가방에는 끝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     


“왜 안 찍으세요?”     

“그냥 눈으로 보면 돼요. 이쁘잖아요”   



그녀가 또 부른다.


"지티님. 여기에 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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