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어린이 청소년 정신병원

독일 어린이 청소년 정신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다

by 노밍


독일에는 총 여덟 곳의 학교에서 미술치료 석사과정을 운영한다. 이 중 세 곳은 국립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립학교로 사립학교 같은 경우 한 학기마다 3-400 만원 정도의 학비를 내야 한다. 그 외에도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업교육을 통해 미술치료를 공부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사립학교에 준하는 교육비가 있다.


내가 독일에서 미술치료를 선뜻 공부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학비였다. 순수미술이나 디자인과가 있는 대부분의 미대는 국립이며, 한 학기 학비는 약 3-40 만원 정도로, 사실상 학교 운영회비만 내면 된다. 게다가 해당 지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학생이 되면 정해진 시간 안에서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으며 학생을 선호하는 일자리도 많다. 그래서 국립대에 입학하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공부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호기롭게 천만 원 정도를 가지고 유학생활을 시작했지만, 1년 반쯤 지나자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비자가 어학비자로 바뀌면서 일할 수 없게 되기도 했고, 학교 입학 또한 계속 미뤄지는 바람에 결국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한 금액만 남아, 학비가 있는 사립학교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는 것엔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미술치료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국립대 한 곳과 사립대 한 곳을 지원했지만, 내심 국립대에서 공부하길 바랐다. 그러나 면접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합격한 사립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합격증을 받고 학기가 시작하는 가을 전까지, 나는 당시 살던 동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독일 레스토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코로나 기간이었지만, 여름 동안은 잠시나마 가게들이 영업할 수 있었다.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였다. 다행히 집 근처 초밥집에서 어렵지 않게 일을 구할 수 있었지만, 출근하기 전날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일은 해보기도 전에 그만두게 되었다. 다행히 입학 전에 벌어둔 돈이 있어 당장 생활이 막막하지는 않았지만, 돈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작은 일이라도 구해야 했다. 그러다 생각한 게 병원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락다운 중에도 병원은 운영되기 때문이다. 업무는 무엇이든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원했던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것도 내가 가장 일해보고 싶었던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에서였다. 내 보직은 독일어로 하우스비르트샤프틀러린(Hauswirtschaftlerin), 직역하면 ‘가정경제 담당자’로, 쉽게 말하면 병원 내 가사 업무 담당이었다. 주요 업무는 병동 내 주방과 음식 및 식자재 관리, 그리고 침상 관리였다.


병원은 집에서는 기차로 세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었고, 기차역에서 내려서도 30분 정도 걸어야 했다. 과거 농장을 개조한 곳이서 그런지 주변은 온통 밭이라 계절바다 바뀌는 작물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주로 일주일에 두 번, 새벽 6시까지 출근해 점심시간 전인 12시까지 일을 했다. 학교에서는 수강신청을 따로 하지 않고 매 학기마다 시간표가 나왔기에, 학교 일정에 맞춰 출근일을 조정할 수 있었다. 2학기 때는 특히 학교 수업이 많아서 아침 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수업을 듣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더군다나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처음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독일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면 졸업 후 대부분 학교, 사회기관,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특히 병원에서 일하는 임상미술치료에 관심이 많던 내게, 이번 아르바이트는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직,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은 비록 가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언젠가 미래엔 미술치료사로서 일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하는 일이 마치 ‘잠목근무’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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