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미술치료 석사과정을 시작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독일에 있을 수 없겠다고, 한국으로 돌아가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 미술치료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독일어 시험에 계속 떨어져 간신히 붙은 디자인 대학 입학이 자꾸만 미뤄졌고 덕분에 합격증으로 입소했던 학교기숙사에서는 나와야 했다. 어렵게 구한 셋방엔 들어가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락다운으로 마트와 병원말고는 외출을 자제하라던 그 때, 유난히 불안과 의심이 많던, 같이 살던 집주인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외출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나를 불러 누구를 만난거 아니냐며 추궁하기도 했다. 그렇게는 살 수 없었다. 그 집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독일어 시험에 합격해 학교에 입학하고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험에선 늘 간발의 차이로 떨어졌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될 것도 같은데 그땐 그게 그렇게나 어려웠다. 나중엔 공부할 동기마저 잃어버렸다. 아니 애초에 동기란게 있었던가? 왜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머나먼 타국에서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는 걸까. 분명 간절히 원해서 제발로 왔음에도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어쩌다 합격해 학교에 간다 해도 과연 행복할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디자인을 공부해봤자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겠지… 그게 싫어서 독일에 와놓고…’
사실 그림을 더 그리고 싶었다. 학부 졸업반 때 피터 도이그 화집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그에게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독일에 왔다. 그러나 졸업 후 유학 자금을 벌겠다며 디자이너로 일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최악의 점수로 미대 입시에 떨어진 날, ’이제는 순수미술같은 작업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은 어느새 상업디자인이나 일러스트에 가까워져 있었고 그렇다면 차라리 현실적으로 졸업 후 취업까지 고려할 수 있는 디자인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찌보면 하고 싶은 것보다 잘하는 것을 하자고 타협한 것이다. 취업을 하면 독일에 더 오래 있을 수도 있겠지. 게다가 마침 피터도이그도 교수직을 그만둔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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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입시를 위해 독일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닐 때였다. 보통 시험은 이틀에서 사흘 정도 진행되었기에 나는 시험이 있는 학교 근처에 숙소를 잡곤 했다. 그날도 시험이 있는 학교 근처에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잡았는데 숙소 주인은 친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면서 나를 유난히 반갑게 맞아주었다. 면접이 있던 날 아침에는 손수 정성스럽게 아침 식사까지 차려주었다. 식탁에 마주앉아 함께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쑥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근데, 디자인이 정말 네가 100% 하고 싶은 일이야?”
“… 음, 한 80%정도?”
그녀는 면접관이 아니었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100%의 마음이 아니라면 아마 힘들 거야.
그럼 네가 진짜 100%로 하고싶은 일은 뭐야?”
“...미술치료?”
“미술치료는 여기서 공부 못해?”
“아. 독일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려면 학비를 내야 해. 그리고 언어적인 어려움도 있기도 하고.
솔직히 아직은 엄두가 안나”
“한국에서는 공부 못해?”
“할수있긴 한대…”
그때 지원한 학교는 그녀 말대로 나의 80% 마음 탓인건지 떨어졌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녀의 말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디자인이 내가 정말 하고싶은 공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디자이너였으니까. 그림을 더 그리고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술치료도 배우고 싶었다. 학부 시절 미술치료 과목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은 독일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에 미술치료 석사과정을 마치신 분이셨다. 나도 그분처럼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미술치료공부를 바로 시작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독일어 시험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돈을 모으고 언어도 더 익숙해지면 그때 미술치료 공부를 하자고 스스로를 달랬었다. 하지만 락다운이 시작되고 알바마저 짤리고, 집주인의 감시속에 공부할 동기마저 잃어버리니 더이상 여기서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다. 미술치료 공부야 한국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개운치 않았다. 아직 다 해본 것 같지 않았다. 100%의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어차피 돌아갈 거라면, 적어도 미술치료 대학원에 지원이라도 해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돈이 없어 그만두게 되더라도, 졸업 후 취직이 되지 않아 돌아가게 된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못 해볼 게 뭐 있나 싶었다. 독일에 계속 있고 싶은 거라면 직업교육을 통해 간호사가 되는 방법도 있다. 간호직업교육을 받으면 교육기간 내내 돈이 나오고, 부족직업군이라 취업도 쉬운 편이다. 무엇보다 정신보건분야 간호사가 되면 나중에 미술치료를 공부할 때도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깨달았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령 대학원에 떨어져 간호를 하게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간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드디어 찾은 기분이었다.
디자인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만들었던 포트폴리오를 급한대로 정리해 미술치료 대학원에 지원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비교적 쉬웠다. 독일어 시험도 통과해 곧바로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고, 아빠는 대학원에 입학했다며 생활비를 조금 더 보내주셨다. 학교 근처로 이사한 뒤에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할 수 있었고 1년 간은 장학금까지 받으며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알았다. 미술치료야말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것을. 그리고 그동안 겪은 모든 일들은 결국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도. 지지부진하다고만 생각했던 언어 공부도, 여러 도시를 다니며 치렀던 시험과 면접도, 비록 입학이 취소되었지만 교수님들의 배려로 청강했던 디자인과 수업들까지 헛된 경험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부족한 언어 실력이었지만, 오랫동안 독일어를 붙잡고 있었던 덕에 어렵지 않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고, 또 디자인과에서 청강한 경험 덕분에 독일 학교 시스템에도 금방 적응했다.
돌고 돌아온 길 같지만, 돌아보면 그 길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 만약 내가 독일어 시험에 일찍 합격해 디자인과에 들어갔다면, 과연 나중에라도 미술치료를 공부했을까? 가보지 않은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일은 지금 여기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정말 100%의 마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나는 그저 그 마음을 믿고, 용기내 한 걸음 내딛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