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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이 쏘아올린 얼굴들 4

‘변방성’과 남극의 콜롬보

by 박동민

○ ‘변방성’과 남극의 콜롬보


2018년 12월, 2박 3일 일정으로 후쿠오카에 다녀왔습니다. 원어민 선생님을 모시고 동료 몇 분과 일본어 스터디 몇 개월 한 수준이라 기초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비즈니스호텔에 여장을 풀고 여행 책자와 구글 지도에 의존해서 더듬더듬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세븐일레븐이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네키네코가 턱을 치켜들고 저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현지인은 아닌 것 같은 직원이 유창한 일본어로 응대했습니다.


어디서 왔어? 얼마나 머물러? 어디로 갈 거야?


여행자의 세 가지 질문을 거주자인 그가 아닌, 초보 여행자인 제가 물었습니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저 만국공용어인 웃음으로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그와 후쿠오카의 편의점에서 영어로 겨우 대화하는 상황 자체가 묘했습니다. 그는 호텔 관광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왔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다고 했습니다. 각자의 고향을 떠나 변방에서 이방인으로 만난 우리는 중심이 둘인 타원을 그려 나갔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 ‘변방’의 의미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변방성(邊方性)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 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20-21쪽)


여행은 심장을 변방으로 옮겨놓는 일입니다. 만난 적 없는 것과 헤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헤어지고 또 헤어지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분명 말해줬는데 발음이 어려워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그가 바다표범이 숨어 노리는 심해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이 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유빙이 보입니다.

콜롬보, 극지에서 살다가 적도에서 만나자!



- 변방에서, 나라는 나라의 난민으로 살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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