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과 일해공원
■ 칠순과 일해공원
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합천읍에 있는 한우고기 집을 예약했다. 마침맞게 아버지와 동갑내기인 이모부의 칠순도 하루 이틀 차이라 두 집 식구들과 근처에 사는 친척들이 제법 모였다. 합천은 부모님 모두의 고향이다. 작은 이모가 읍내에서 목욕탕을 하고 있었고 잔치가 끝난 후 그곳으로 몰려갔다. 목욕탕 앞에는 수변공원이 있었다. 합천댐을 지으면서 생긴 물길을 따라 만든 공원인데, 독재자의 호號를 딴 이름으로 논란이 있는 공원이다. 공원에 조성된 인조 잔디 구장에서 매년 유소년 축구대회가 열린다. 공원 앞 목욕탕에서 이긴 팀과 진 팀의 아이들이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친인척이 구례에 있고, 칠십년지기 친구들이 구례에 있다. 아버지의 뿌리는 산이 아니다. 아버지의 신념은 그 뿌리에서 뻗어나간 기둥이었을 뿐이다. 기둥이 잘려도 나무는 산다. 다른 가지가 뻗어 나와 새순이 돋고 새 기둥이 된다. (252-253쪽)
독재자는 죽는 순간까지 후회나 반성은 없었다. 죽기 직전에 하는 말은 진실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때의 거짓말이 참된 거짓이다. 새벽 네 시 어김없이 목욕탕 주인은 밸브를 올리고 수도꼭지를 비튼다. 합천댐처럼 물이 콸콸 쏟아진다. 네팔에서 온 세신사가 통지서를 주인에게 건넨다. 비자기간 만료로 체류허가 기간은 끝났고 14일 안에 이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불법체류자라고. 실망했어요? 후회하세요? 그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다. 기록적인 폭우로 댐이 수문을 열었다. 공원이 침수되고 유소년 축구대회가 취소되었다. 목욕탕 주인도 울상이다. 부표처럼 떠 있는 축구공을 그가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