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4.3
■ 나의 4·3
4월이 오면 마음이 무겁고 저릿하다. 2014년 4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 달 16일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햇볕에 달궈진 돌이 서서히 식어가듯, 내 탓이 아니니까, 내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없으니까. 몇 발 짝 물러나 있었다. 제주 4·3사건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제주 4·3과 여순사건을 배운 정도다. 2000년 1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금기가 풀린 이후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며 수년을 살았다. 제주를 몇 차례 방문하고 현기영의《순이 삼촌》을 읽고 영화와 드라마로 그 실상을 접하면서 제주 4·3사건의 실체를 알아나갔다.
제주 4·3사건에 대해서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발표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의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는 설명이 지금까지 가장 공식적인 입장이다. 주1)
토벌대 뿐 아니라 무장대도 학살을 저질렀다. 한 마을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 살았다.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심지어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상황에서 제주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모든 희생을 위로했다. 이후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 도민에게 사과했고 2014년 박근혜 정부는 4월 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다.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폭력으로 인해 고통 받은 분들께 사과하고 회복 노력을 약속했다. 2021년 제주지방법원은 관련 행불인과 일반재판 수형인에게, 2022년 첫 직권재심 재판에서도 수형인에 각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 4·3평화공원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2018년 4월 5일부터 2박 3일의 일정 중에 제주 4·3평화기념관을 찾았다. 2017년 태어난 딸과 환갑을 맞은 장모님과 마침맞게 동행했다. 70주기 추모식이 열린 직후라 감회가 남다르다. 제1관 ‘역사의 동굴’에서 백비(白碑)를 만난다. 여느 비석과 달리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희생자의 죽음을 상징하듯 고요하게 누워있다. 기념관을 나올 즈음 지나는 좁은 통로가 인상 깊다. 좌우 벽면, 천장과 바닥을 빼곡하게 채운 희생자의 사진. 노약자는 물론이고 앳된 얼굴이 특히 많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기들, 생일이 기일인 아이들.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었다. 강보가 관이 되었다’주2) 백목련 같은 종이에 가족의 이름으로 ‘평화기념관, 잘보고 갑니다.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적어 전시 벽면에 걸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하얀 불꽃같았다.
▶ 두 자매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시신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교문 건너 보리밭에서 눈에 덮여 있었어. 거의 모든 마을에서 패턴이 같아. 학교 운동장에 모은 다음 근처 밭이나 물가에서 죽였어. (작별, 249쪽)
《작별》제1부(새)는 제주에 도착한 경하가 폭설을 헤치고 가다가 부상을 입고 우여곡절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하는 과정을 그린다. 인선과의 대화와 기억, 4·3을 겪은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姜正心)’ 과 인연을 맺는 과정이 삽입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2부(밤)과 제3부(불꽃)는 병원에 있을 인선의 환영이 나타나 경하와 대화를 나눈다. 강정심이 4·3때 가족과 헤어지는 과정, 특히 오빠 ‘강정훈(姜正勳)’ 의 생사파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 그 와중에 강정심이 인선의 아버지와 연을 맺는 개인사와 함께 강정심과 인선이 모아 놓은 제주 4·3에 관한 자료를 보여준다. 소설 속 묘사는 오히려 순화된 편이다. 실상은 더 끔찍하다. 이를테면 이런 글을 보라.
▶ 한밤중에 집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총으로 쏴 죽이는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열 살짜리 소녀를 대검으로 찔러 죽이고, 어린아이를 돌에 메쳐서 죽이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어미를 강간해서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또 예쁜 여자만 골라서 데리고 살다가 제주도를 떠날 때는 함께 살던 여자를 죽이고 갔다는 등등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사람을 벼랑 끝에 세워놓고 조준 사격을 해서 바다로 떨어져 죽게 했고, 마치 고양이가 생쥐를 갖고 놀다 죽이는 것처럼 사람 목숨을 갖고 희롱하다가 장난삼아 죽이고, 누가 더 죽였는가 내기까지 했다. 옛날 일본군이 조선인이나 중국인들을 학살할 때의 상황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주3)
4·3사건으로 당시 제주도민의 인구 십분의 일인 삼만 명이 섬에서 살해되었다. 미군정의 명령과 서청(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토벌대가 저지른 초토화 작전과 그 만행을 보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이 떠오른다. 합법적 폭력의 권한을 넘어 국가는 자유의 가면을 쓴 괴물을 섬으로 보냈다. 서북의 변방에서 온 서청의 마음이 처음부터 검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의식하고 살지 않으면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안개’가 자욱했다. 개 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모든 것이 하얗다. ‘개는 개인데 짖지 않는 개’의 이름, ‘하얗고 커다란, 짖지 않는 개. 먼 기억 속 어렴풋한 백구를 닮은 개.’주4)
주1) 박래군,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클, 2020, 15쪽
주2) 한강 소설, 《흰》, 난다, 2016, 120쪽
주3) 박래군, 앞의 책, 31쪽
주4) 한강 소설, 《흰》, 난다, 2016, 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