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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Jan 26. 2022

취미, 곰인형 만들기에 빠지다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찾은 취미가 하루를 완전하게 만들어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잡생각이 많고 수 없는 망상에 빠지기 일수였다. 학생 때는 잘생긴 남학생과 연애하는 망상이나, 미래에 대한 내 모습을 그리며 좌절도 하고 희망에도 빠졌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은 스스로를 좀먹는 자괴감에만 빠져있었다. 그래서 난 이러한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 집중해야 할 '취미'가 건절히 필요했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게 뭐였더라.'


가장 먼저, 내 흥미가 동하고 즐겁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렸을 때 펠트지로 즐겨 만들었던 작은 인형들이었다. 동네에 있는 꽤 큰 문구점에서 색별로 펠트지를 사 와 토끼와 곰, 돼지 등의 인형을 만들며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칭찬을 받은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15년도 전에 일. 과연 내가 지금도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실과 바늘을 사용하는 방법도 잊어버렸고, 재료도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 사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는 나는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엉성한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건 애초에 하지도 않는 게 낫겠다 싶은 나였다. 그래서 아마 과거에 있었던 무수히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들도 이렇게 놓쳐버리고 말았겠지.


그래서 처음 시도해본 게 비교적 간단한(?) 프랑스 자수였다. 인터넷에서 당장 귀여워 보이는 패키지를 사 유튜브까지 열심히 보며 시도해봤다. 그런데 원래 바느질이 이렇게 어려웠던 건가? 나는 패닉에 빠졌다. 꽤나 어린 시절에 실과 바늘로 뭐든 뚝딱뚝딱 만드는 데에는 인재였던 학우로서 이건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실을 바늘에 넣는 것부터, 도안에 맞춰 촘촘히 쌓아 올리는 작업, 매듭을 짓는 일까지 죄다 엉성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반도 완성하지 못하고 나는 포기해버렸다. 결과물이 완성되면 완성될수록 예쁘지 못하고 경력자에 비해 형편없는 내 실력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못하는 건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때의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하고 능숙한 나를 기대하는 것에만 익숙했던 터라 시작이 삐끗하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포기해버렸다. 결국, 그렇게 쌓이다 보니 조금만 어려우면 쉽게 포기해버리는 내가 된 건가, 그래서 그런 스스로에게 자괴감에 빠진 건가. 싶은 또 다른 생각이 나를 덮쳐왔다. (INFP의 특징... ㅎ)


그러다 SNS에서 인형 키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쉽게 포기하지만 초반에 만만해 보이면 과감하게 시도하는 경향이 있어 또 바로 인터넷을 뒤져 곰돌이 인형 패키지를 샀다. 초보자도 한두 시간 만이면 할 수 있는 기초적인 DIY 키트였다.


처음으로 만든 나의 곰탱이. 서툴기 그지없지만 저 멍청한 눈빛과 엉성한 몸태가 썩 마음에 들어 난 좋다.


바느질 솜씨가 영 별로였지만 아주 다행히 저 폭신한 털천이 내 어설픈 실력을 조금은 가려줬다. 멍해 보이는 눈알도 한몫한다. 지금 내 첫 인형은 침대 옆 탁상에 올라 나의 꿈자리를 지켜주는 소중한 지킴이가 됐다.


내 첫 인형을 완성시키면서 느낀 건 무언가를 끝까지 한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하거나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순간의 게으름을 넘기고, 작은 실수에 관대해진다면 완벽하진 않아도 완성된 '결과'가 나한테 주어졌다. 난 그 성취감을 오래간만에 느끼면서 작업을 하는 시작부터 끝까지 나를 괴롭히거나 상처 주는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그건 인형을 완성시킨 것보다, 무언가를 끝맺음한 것보다,  더 큰 보람과 거대한 의미였다.


그 이후로 주구장창 만들었다. 심지어 천까지 동대문에 사와서 키링도 만들어 보고, 도안도 직접 제작해 봤다.


잡생각을 하던 에너지로 다양한 곰돌이 인형을 탄생시켰다. 쓸데없는 것을 고뇌하는 대신, 난 앞으로 이렇게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열중할 것이다. 그럼 조금은 내 감성적인 뇌도 단순하고 간단명료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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