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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Jan 26. 2022

가족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

저녁 10 55. 동탄에서 강남역으로 가는 막차 버스길에 올랐다. 불량하게도 지금의 ,  다리를 왼쪽 빈자리에 뻗고 허리는 창가 쪽에 기댄  누가 봐도 지친 기색으로  눌러앉아 있었다. 버즈에서 들리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주는 적막한 분위기가 좋았다.


양심상 무릎은 적당히 굽히고 찍었다.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꽤나 추워보인다.

오늘은 솔직히 말하면 피곤한 날이다. 화성에 각자 따로 사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고스톱을 치며 겉으로 보기엔 꽤 재밌는 시간을 보낸 듯하다. 하지만, 난 떠들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미묘한 눈치싸움과 이 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원래 가진 내 성격을 죽이느라 한참을 혼자 씨름한 기분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에게서는 '딸 잘 들어갔니'라는 메시지와 함께 부재중 통화 하나가 와있었다. 감동적이게 겨우 이 문자 하나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자상한 우리 아빠. 그러나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식사 자리에서 장어 한 조각씩을 먹으며 배부름에 금방 손을 놓고 마는 엄마와 나에게 핀잔을 어찌나 주던지. 특히나 엄마는 장어 껍질이 비리다며 깨끗이 살만 발라 먹은걸 아빠는 굳이 젓가락으로 틱틱 껍질 더미를 건들며 타박을 했다. "이 사람아, 이 비싼걸 이렇게 먹으면 어떡해?"


 엄마는 비리다며 자기 취향이라고 항변했지만 술이 얼큰히 취한 아빠 앞에서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내 말은 조금 들어먹는 양반이라 좀 강하게 엄마를 대변하자  엄마가 발라낸 장어 껍질을 냉큼 집어 자기 입안으로 꿀꺽 가져다 넣었다.

문제의 장어. 밑반찬도 맛있었고, 비리지도 않아서 모두의 입맛에 맞았다. 단, 내 동생 목에 가시가 걸린 것만 빼면...

설상가상 옆에서는 동생이 목에 가시가 걸렸다며 징징거리고 있었다. 걱정됐던 엄마는 밥을 한술을 꿀떡 삼키면 넘어간다는 민간요법을 일러주었고, 아빠와 나는 그거라도 해보라면서 하기 싫다는 동생을 부추겼다. 별 방법이 없었던 그 애도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덜어 삼켜보았으나 결과는 더 안 좋은 상황으로 흘러갔다. 가시가 더 아래로 깊이 넘어간 것이다.


결국, 밥 먹다 말고 중간에 동생은 응급실로 가 내시경까지 하며 가시를 빼냈다. 그 와중에도 나한테 슬그머니 카톡을 하면서 어찌나 말리지 못하고 부추겼다며 성질을 내던지. 답장도 하기 싫어 핸드폰은 주머니 깊은 곳에 찔러 넣고 가게 문을 나설 때까지 꺼내지 않았다.


동생이 응급실을 가게 된 탓에, 2차로 그 아이 집에서 고스톱을 치기로 한 우리는 나의 통솔 하에 동생 오피스텔로 나섰다. 가면서도  세 가지 일이 있었는데, 하나는 장어값이 비싸다며 사장님께 저희가 먹은 게 맞냐며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 우리 아빠와, 가는 길 내내 이 길이 맞냐며 나를 지적하는 우리 아빠와, 동생집 문 앞에 있는 자전거(동생 자전거)를 오피스텔 복도 안에 서 타는 우리 아빠였다.


사람은 없었고, 그냥 잠깐 자기 실력을 뽐낸다고 30초간 타는 정도였다. 다행히 나말곤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았다.

'우리' 아빠라는 앞에 수식어가 나를 지치게도 하고 웃기게도 했다. 아빠가 멋대로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는 도어록을 풀고 있었는데, 도통 열리지가 않아 세 번쯤 하고 근처에 있다는 동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빠, 엄마, 나는 동생이 올 때까지 복도에 서서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동생이 오자마자 우린 땅굴을 발견한 두더지 떼들처럼 쏙쏙 집 안으로 들어서길 바빴다. 그리고 바로 판을 깔고 동생이 준비해둔 화투를 꺼내 그 이후부터는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건 내가 돈을 많이 딴 덕분에 한 소리일 수도 있다. 2만 원 이상 잃었다면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좋지 못한 시간이라고 이곳에 투덜대기 바빴을 거다.


나 역시도 간사한 인간이었고, 아빠가 용돈 5만 원을 더 챙겨 주자마자 28살 나이에도 기분이 한순간 좋아졌다. 10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나는 서울로 가야 하는 탓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바깥의 차가운 바람이 속눈썹을 살살 건드렸지만 춥기보다는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저 안이 즐거웠어도 갑갑하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가족을 만난다는 건 어느샌가, 만나고 난 뒤에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만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만나기 전부터 디데이를 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탓에 나는 꾸준히 가족들을 만나 힘이 빠지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일들을 겪어야 했다. 버스 안 지갑 속에 꼬깃 들어있는 지폐 서너 장들과 아빠가 택시 타라고  5 원짜리  장을 보며 괜히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꺼내본 휴대폰 속에  있는 아빠의 문자  . 이런 것들이 모여  당신들을   있게 만드는 거겠지.


서로가 맞진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과 애정이 는 우리 사이. 다음번에도 분명 나를 힘들게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곧 다시 만나자며 답장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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