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너무 감정을 쓰지 마세요."
최근까지만 해도 힘든 일이 많았던 나에게 옆팀 팀장 구름씨가 한마디 건넸다. 그때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말만은 또렷이 마음에 박혔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던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구름씨에 비해 나는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쉽게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이었다. 특히, 회사에서는 자주 우울감에 빠졌고 작은 것에 불안해했다. 주변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나만 그렇지 않아 조급한 마음을 항상 누군가에게 터놓기 바빴다.
아마 그날도 그랬을 것이다. 회사생활 중 이슈가 터져 불안한 마음을 구름씨에게 터놓으며 내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걸 듣던 구름씨는 내가 회사에서 너무 많은 감정을 사용한다고 일러주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그에게 토로했던 내 상황들과 겪고 있는 수만 가지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세어보면서 사무실에서 감정적 에너지를 정말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좋은 감정이던 나쁜 감정이던, 회사에 집착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건 결코 스스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감정들은 일상생활 영역까지 침범해 정신과 신체를 피곤하게 만들고, 온종일 불안에 떨게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최근엔 퇴사까지 고민하며 골머리를 앓으면서 이래저래 구름씨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 많았었다.
나는 그의 조언을 듣고 회사에서 감정을 적당히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집착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장 먼저 버리기로 했다. 완벽하지 못하면서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난 안 그런 척하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바랐고 또 실망감을 안겨 주는 것을 굉장히 참지 못했다. 그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회사 생활 속에서 지적과 피드백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받았을 때 입는 대미지가 상당히 컸다.
마침 내가 맡고 있던 큰 광고건을 후배에게 위임해줘야 하는 일이 생겼다. 2년 가까이 담당했었고, 나름대로 키워놨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원래의 나라면 회사 안에서 영역이 작아졌다는 불안감과 자신의 쓸모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며 우울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회사 안에서의 입지와 욕심 같은 부분들을 덜어내니 오히려 부담과 책임감은 줄어 마음이 편해졌다. 자연스레 사물실을 출근하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어두웠던 일상이 조금씩 볕이 들어왔다. 집착을 버리니 감정을 사용하는 일도 자연스레 덜어진다. 왜 구름씨가 회사에서 감정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가는 길이 멀었다. 내려놓아야 할 것도 많고 당장은 아니겠지만, 다시 또 감정에 휘둘리는 일들이 분명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젠 '회사에서 감정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
난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구름씨처럼 타인에게 같은 조언을 해주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