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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Mar 09. 2022

평생 애가 되고 싶은 모자란 어른이 접니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대학 동기였던 친구 선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선이는 새내기 시절부터 알아왔던 사이로 나와는 정반대인 성향을 가진 친구였다. 항상 수업에 빠지고 흥청망청 놀러 다니기에만 정신 팔려있던 내 옆에서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며, 과탑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던 모범 학생이었다. 이렇게 정반대였던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 시절 동안 선이는 내게 많은 도움을 줬으며 졸업을 하고 나서도 1-2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며 인연을 이어가는 사이였다.


먼저 도착한 내가 선 이에게 어디쯤인지 위치 확인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화면에 선이의 이름이 뜬 건 오랜만이기에 조금 낯선 느낌이 있었다.


"여보세요, 선아 어디야?"

"도착했어? 나 지하주차장에 차대고 있어. 좀만 기다려줘!"

"차? 응응, 알겠어. 조심히 와!"


차? 자가용? 운전하는 차?! 스물여덟이면 개인 자가용 하나쯤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시기였으나, 나는 스무 살 시절의 선이만 줄곧 기억했기에 자기 명의에 자동차를 몰고 온 그 친구가 조금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곧장 만나고 나서도 한껏 성숙해진 그녀의 외관에 놀라고,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 예비 신혼부부 주택청약을 신청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게 되었다. 얘,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된 거지?


내 건너 건너, 혹은 먼 지인들이 결혼을 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 예비 신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와 같은 세계에 있던 친구가 저 멀리 어른의 섬으로 떠나간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도 만화나 똥방귀에도 자지러지게 웃는 애자식인데, 선이는 자동차세도 내고 중학생 아이들도 가르치는 학원 강사가 되어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양새를 제법 갖춘 인간이 되어있었다.


어른이 된 선이와의 만남은 스무 살 때처럼 즐거웠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떠나가지 않았다.


"넌 언제 만나도 그대로야, 정말 똑같아."


물론 나쁜의 도로 말한 게 아니었겠지만, 내 마음속 언저리에 자리 잡혀 있는 '도태된 자신'때문에 난 저 말이 자꾸 생각났다. 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겉만 늙은 애인데. 나와 같은 나이를 먹고 같은 대학을 나온 선이는 어느새 진짜 어른이 되어서 나날이 성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렇게 선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나만 내버려 두고 전부 어른의 세계로 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차츰 밀려왔다. 난 아직 자동차도 안 사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지 않고, 새로운 일도 더 해보고 싶은 사람인데 어느새 주변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것에 집중하며 어른의 정석 루트를 밟아가는 중 같았다.


왜 다들 이렇게 빨리 어른이 되는 거지? 아니, 내가 나잇값을 못하는걸 남 탓하는 걸까?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가 어른이 되기 싫어, 주변 사람들도 나와 같이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큰 게 맞았다. 난 여전히 철이 없었지만 그 철없음이 나쁘지 않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내가 좋았으며, 아직은 홀로 살아도 외로움보다는 만족스러움이 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있던 세계를 떠난다면 그 수순을 같이 밟지 못한 내게 낙오자라는 오명이 씌워질 것 같아 싫었다.


언젠가 내가 만족하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도태됨'으로 변해있을까 봐 두렵다.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내 정신과 마음은 느리게만 움직인다. (어쩌면 그 자리에 멈춰있는 걸 수도 있다.) 아직은 평생 애가 되고 싶은 '가짜 어른'인 나에게 오늘 선이와의 만남은 조금 현실을 자각시켜주는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만 했었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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