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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Mar 04. 2022

출근과 퇴사의 기로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K직장인 영자

요즘 인생에 쓴맛을 맛보며 신체적, 멘탈적 결함으로 인해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나였다.


K-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은 한다는 퇴시시기. 나 역시도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밥 벌어먹고사는 현실 어른이기에 어느 한 시점에 들어서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출근하기 싫어.'부터,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언제 퇴사하지.'까지. 이 루트를 매일마다 반복하는 과정이 지겹고 사무실을 출근할 때마다 쿵쿵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는 광고대행사는 2년이 조금 넘은 스타트업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이번이 두 번째 직장이었다. 2년 가까이 다닌 이 회사를 체계도 잡혀있지 않을 때 들어와 이게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추구하는 바람과 다른 정반대의 현실에 부딪혔고, 또 그 속에서 여러 번 고비를 참고 이겨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과 청년내일채움공제였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을 다니는 청년들의 목돈 마련을 위한 것으로, 한 달에 한번 12만 5천 원씩을 2년 동안 납입하면 1600만 원으로 돌려주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있어 빛과 소금 같은 제도였다.(지금은 12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단, 한번 가입하면 재가입이 어렵고 가입을 했던 기업에서 24개월 납입을 무조건 완료해야 1600만 원의 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도 포기하면 원금 회수에서 이자 약간만을 돌려받을 뿐. 거의 돈 천만 원이 날아가는 것과 같았다. 나는 현재 5-6개월 남은 시점으로 사실 앞으로 조금만 버티기만 하면 내 통장에 그 돈이 꽂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면 이러한 고민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루가 24시간을 넘어, 48시간같이 길게만 느껴지고 회사 생각만 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결국 끝내 잠이 들면 꿈속에서 화가 난 대표가 나타나 내게 윽박을 지르고 있었다. 또 그렇게 눈을 뜨고, 시간 확인보다 먼저 광고 효율을 확인하는데 이때, 광고 상황에 따라 내 기분의 방향이 결정됐다. 언제부턴가 광고가 좋으면 내 기분도 좋고, 광고가 안 좋으면 내 기분도 안 좋았다.


이 짓을 사무실에서 뿐만 아니라 퇴근 후, 주말, 친구와의 약속, 집에서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었다. 24시간 돌아가는 광고의 특성상 꾸준히 업무 확인을 해줘야 했고, 언제부턴가 내 일상을 침범하는 이런 부분들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즐거운 곳에 가서도 마음 한편에 업무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긋지긋해지면서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 또한 받지 못하는 내가 호구같이 느껴졌다.


잘하면 더 잘하라고 말하고, 못 하면 그동안 잘해왔던 것까지 깡그리 못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곳. 진작 정이 떨어진지는 오래였지만, 그래도 동료들과 1600만 원이라는 큰돈이 눈앞에 아른거려 조금만 더 참자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이 망가지고 멘탈이 뜯기면서 과연 저 돈의 가치가 그 정도로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나의 모습. 직접 그려봤는데 좀 웃기고 글씨가 비뚤비뚤하다.


내 몸은 정말 날로 쇠약해졌다. 우선 수면부족으로 두통이 심하게 왔고, 앉아 있을 때마다 꼬리뼈 쪽 허리가 아파 맨바닥에 누우면 혼자 서있기가 힘들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거기다 최근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하혈도 하게 되면서 진짜 내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가 병원비가 더 나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다가도 '1600만 원이 어디 땅 파서 나오는 줄 아나, 그동안 버틴 게 아깝지 않아?'라는 양가감정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을 못 잡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도저히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만 하면서도 이런 스스로의 모습도 싫어 날이 갈수록 자존감만 깎여가는 상황이었다.


왜, 난 이렇게 나약한 걸까. 조금만 더 독하고, 예민하지 않았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끊임없이 자괴감에 빠져든다. 퇴사에도 용기가 필요했고, 무언가를 버티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난 아직 무엇을 끊을 용기도 그렇다고 계속 추진할 용기도 없기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선택해 버리고 싶지도 않은 이 마음. 어른들만 느낄 수 있는 이 감정을 28살의 나이에 제대로 맞닥뜨리는 중이다.


과연, 난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고민하는 이 시기가 괴롭기만 하다. 하루빨리 인생 그래프의 변곡점 앞에서 무수히 생각했던 고민들의 가치가 빛을 보길 바란다. 그리고 징징거릴 때가 없어 글로 남기는 이 심정을 사회 선배님들이 조금은 헤아려주길 바라며 하루빨리 더 성숙된 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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