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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Feb 26. 2022

두 번째 결혼도 실패했다고 하니, 새엄마가 웃는다

내가 열일곱 살 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가부장적이고 아내의 순종을 바라는 우리 아빠와 진취적이고 도전의식이 강했던 엄마는 애초에 맞지도 않았고, 서로가 고집불통인 성격이라 누구 한 명이 이기고 지는 꼴을 보지 못했다. 그 속에서 나와 동생은 불안함과 우울함을 배웠고 언제든 가정이 찢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안고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우리에게 당연한 수순인 양 이혼 통보를 하였다. 드디어 올게 왔다는 듯이 어렸던 우리는 슬퍼하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빠와 살게 된 나와 동생은 주말마다 엄마를 만나며 나뉜 가족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다 일년이 지나지도 않아 아빠는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이혼에 대한 여파가 사그라들지도 않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재혼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우린 받아들일 수 없었고, 거부했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이때 난 한 가지를 배웠던 것 같다. 남녀의 사랑이 부질없다는 것을. 2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연인을 고작 몇 개월 만에 갈아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빠의 새로운 여자는 우리 집에 빠르게 침투하였다.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느낀 첫인상은 이랬다.


'아, 저 여자 딱 아빠 스타일이겠다.'


엄마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여성스럽고, 얌전하고, 보드라워 보였다. 그때는 아빠에 대한 분노감에 휩싸여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분홍빛 봄꽃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난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도 벙끗하지 않은 채 밥만 묵묵히 먹었다. 친해지기 쉬웠던 내 동생과는 다르게 나는 아빠의 재혼 후 꽤나 홀로 방황했다. 좀처럼 새엄마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고 방 안에서 웅크려 밤마다 눈물만을 훔칠 뿐이었다.


10년이 지나고 보니 그때를 생각하면 새엄마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었다. 나의 분노는 그녀가 아닌, 아빠를 향한 것이었으나 엄마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이유로 만만했던 새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난 너무 어렸고 누군가를 배려하기에는 나 자신도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악감정은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는 어느새 사랑과도 가까운 정이 느리지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마 그건 나의 노력보다는 그녀의 노력이 컸을 것이다.


이제 우린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서로에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아빠의 험담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위에 말했다시피 우리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상대방이 자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맞춰줘야 하는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나도 20년 가까이 살면서 그걸 알고 있었고, 성격적으로 전혀 맞지 않아 대학생이 되자마자 집을 떠나 살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아빠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새엄마의 고충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오늘 나와 새엄마, 아빠 사이에 작은 오해가 있었다.  오해를 설명하기에는 이야기가 길어질  같으니 패스. 우선 이 사건에서 가장 잘못한 사람을 따지자면 아빠, 그리고  오해 때문에 속이 가장 상한 사람은 새엄마였다. 원래 나에게 전화보다는 메신저를 많이 하던 새엄마가 오늘은 기분이 많이  좋았던 것인지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엄마는 아빠 때문에 너무 힘들어."


새엄마는 현재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아빠에 대한 실망감 등을 하나씩 나에게 토해냈다. 남들이 볼 때는 친딸한테 자기 아빠를 욕하고 있는 그녀의 하소연이 웃기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빠는 여자들과 30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여자의 마음은 조금도 모르는 전형적인 60년생 남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같이 살고 있는 새엄마가 대단하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어쩐지 글의 흐름이 아빠의 욕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모두 사실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난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주다 새엄마에게 이렇게 호통쳤다.


"엄마는 두 번째 결혼도 실패했어! 왜 이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니 새엄마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아빠를 벗어나 홀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친엄마와는 다르게 새엄마는 새장의 예쁜 종달새처럼 답답하게 갇혀 살고 있는 거 같아 안쓰러웠다. 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과 약간이라도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던 작은 호통이 제대로 먹힌 것이었다. 새엄마는 나 때문에 웃겨 못살겠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목소리로 자긴 남편 복은 없지만 자식들 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었지만, 난 그 말에 조금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어쩐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아빠의 존재를 새엄마가 끌어안고 가고 있는 거 같아서. 새엄마의 선택이었겠지만 내가 책임지고 가져가야 할 문제들까지 나 대신 맡고 있는 거 같아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예쁜 액세서리와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새엄마가 어느새 아빠를 만나 포기하게 되고, 중고등학생이었던 사춘기 두 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타인의 슬픔을 볼 줄 아는 나이가 되니 그제야 속이 시꺼멓게 탄 새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 위해 내일 난, 그녀를 만나러 간다. 예쁜 꽃다발과 반짝거리는 귀걸이를 사들고 갈 예정이다. 나의 이런 작은 행동이 그녀에게 위안을 주기를. 그리고 내 사랑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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