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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Apr 04. 2022

봄이 오니 마음이 허기지다

어느새 봄이다.


나뭇가지에는 톡 터질듯한 봉우리들과 작은 새싹들, 수많은 들꽃들이 간드러지게 피는 어여쁜 계절이 왔다. 생명이 소생하는 이 계절이 난 뛸 듯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겨울이 빨리 사라지길 바랬는데도 왜 인지 들뜨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식는 내 감정이 더 고요하고 적막하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은 신이 나고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아직도 한 겨울 속에서 눈 녹지 않은 얼음 웅덩이 같달까.


벚꽃이 피면 소풍 가겠다는 2월의 마음이 막상 만개하는 꽃들을 봐도 별로 신이 나지 않는다. 봄노래, 사랑 노래를 들어도 감정은 고요하다. 살랑거리는 떨림을 반겼던 내가 어느새 고루하기 짝이 없는 스쿠루지 영감처럼 모든 게 사치라고, 우악스럽게 변해버려 슬프기까지 하다.


누구지, 나의 낭만을 빼앗아 가버린 게.


몇 년 동안 50을 벗어나지 않았던 내 몸무게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마음이 텅 빈 것을 식욕이 대신 채우는 듯하다.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아도 아이스크림 한통을 뚝딱 비우게 되고,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죄책감 한입, 면발 두입, 국물 호로록하며 먹는 걸로 잠깐이나마 마음을 채운다.


봄이라 예쁜 옷도 입으려고 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이 싫어 그냥 사람다울 수 있을만한 옷만 끄집어 입고 다닌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봄의 싱그러움이 나를 기죽게 만드나? 따뜻한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내 마음에 적당히 그림자가 졌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건 봄의 잘못이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련다. 저녁의 추위가 아직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어쩌면 난 겨울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꽤 사랑했나 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정이 요동칠 때가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사람들은 계절을 탄다고 말한다. 변해가는 날씨와 풍경, 색깔에 따라 분위기에 젖는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느껴졌는데 막상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많이 우습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을 또 하면 조금은 위로도 된다.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는 건, 기대감과 함께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게 된다. 나약한 어른이 될수록, 감정이 단단하지 않을수록 휘청거리며 흔들거리는데, 지금의 내가 그런 것 같다.


벚꽃이  져버리기 전에 나도 봄을 즐기고 싶다. 앞으로 글도  열심히 쓰고, 나쁜 생각도 덜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녀야지. 그럼 어느새 에게도 봄의 계절이 스며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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