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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Feb 22. 2023

<TAR 타르>…말러 5번이 암시하는 마에스트로의 몰락

개봉 당일 올리는 리뷰 - 개올리

리디아 타르는 누구인가.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여성 최초 상임지휘자. 에미·그래미·오스카상을 석권하고,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난민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현시대의 모범적 인물. 주위엔 든든한 배우자와 충실한 어시스턴트, 그를 선망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정점에 선 순간, 균열이 시작되고 몰락한다. 


케이트 블란쳇의 눈엔 많은 게 담겨 있다. 차가운 마스크 아래 뜨거운 내면의 욕망이 넘실거린다.


22일 개봉한 영화 ‘TAR 타르’(연출 토드 필드)는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의 성공적인 이력부터 읊어나간다. 실제같이 생생해 가상인물이라는 점을 잊게 될 정도다. 리디아가 취임 후 첫 레코딩 곡으로 선택한 음악은 말러 교향곡 5번. 영화 전편을 관통하는 이 음악은 일과 사랑을 모두 가진 마에스트로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할 그녀의 비극적 운명과 정확히 조응한다.


이 곡을 작곡할 때의 말러와 이 곡을 선택할 때 리디아의 위치는 비슷하다. 말러는 지휘자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작곡가로서 존경받기 시작했던 1901년에 5번 교향곡을 썼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는 당시 41세였던 중년 남성 말러가 아름다운 22세의 알마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으로 해석된다. 현악기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에 하프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이 더해진 곡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쓰여 우리에게 익숙하다.


음악할 때 가장 행복한 타르 누나. 하지만 베를린필 상임지휘자 위치면 마냥 음악만 할 순 없죠.


타르 역시 극 속에서 "아다지에토의 본질은 사랑이에요"라고 자신만만하게 정의 내린다. 이때 타르는 보수적인 클래식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뜨린 여성 지휘자로서 어린 첼리스트 올가에게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업계에서 배제하는 권력자이기도 했다. 말러와 리디아 모두 성공한 음악가이자 샘솟는 열망의 사랑꾼으로서 가장 정력적인 시기에 이 작품에 손을 댔다.


하지만 말러 교향곡 5번은 사랑의 행복만을 품고 있지 않다. 고독감과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이뤄질 수 없는 두 남녀의 비극을 다룬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모티브가 활용됐고, 침잠하는 듯한 마지막 베이스 선율은 뤼케르트 시에 붙인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히고’에서 따왔다. 작품이 암시한 대로 말러의 결혼 생활은 알마의 남성 편력과 말러 자신의 편집증적 성향으로 인해 불행했다. 리디아 역시 그녀의 탐욕과 오만, 그리고 딸을 제외한 주위 사람 모두와 ‘거래 관계’였음이 드러나며 산산이 갈라진다.


올가를 귀여워 하는 타르 언니. 단원들 당혹 난감 시샘 후덜덜.


말러 5번에 이어 들려주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 역시 사랑과 고통, 불행한 결말이란 영화의 서사를 암시한다. 영화에선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버전이 명연주로 언급되는데, 이들의 개인사를 알면 흥미롭다. 뒤프레는 바렌보임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온몸이 굳어가는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고, 예술적 야망으로 가득 찼던 바렌보임에게 버림받았다. 뒤프레처럼 리디아도 올가에게 외면당하고, 동반 출장을 떠났다가 어린 친구에게 집적대는 권력자란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진다.


작곡까지 하는 타르 언니. 아파트 소음 주의.


영화는 ‘예술가의 삶과 예술은 분리해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극 중 리디아는 도덕성에 흠집이 나며 추락한다. 클래식계 권력의 작동 방식은 신랄하게 드러난다. 실제 오케스트라 내부를 엿봤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주인공의 성인 타르(TAR)는 예술(ART)과 쥐(RAT)를 변용한 애너그램이다. 예술을 지향하지만, 그러려면 처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사진으로라도 풀어보는 노에미 메를랑. 차기 엠마뉴엘.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이제껏 그녀의 명연을 압축한 종합선물세트 같다. 줄리아드 음대 특강에서 한 학생을 가차 없이 지적하는 10분가량의 롱테이크나 극단적 로 앵글로 포착한 지휘대에 선 모습은 압도적이다. 신경증적이고 강박적인 표정은 ‘블루 재스민’이 연상되고, 새로운 여성에 빠져드는 눈빛은 ‘캐롤’이 겹쳐진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강력 후보다. (양쯔충이라 쓰고 양자경이라 읽는 예스마담과 실리 대 명분 대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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