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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Feb 22. 2023

'주연의 위치'에도 '조연의 마음' 간직한 배우 진선규

사람이 먼저다 리뷰 - 사먼리

"저 조선족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2017년 제38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소감 중)


불과 6년 전만 해도 조선족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던 배우가 단독 주연으로 우뚝 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카운트’(연출 권혁재)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 권투 금메달리스트 박시헌으로 열연한 배우 진선규(45) 얘기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의 표본과 같은 필모그래피. 그런데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진선규는 "이번에 주인공을 했다고 앞으로도 꼭 주연만 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혼자 끌고 가는 것보단 주위 사람들과 같이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 내렸다. 모두가 선망하는 ‘주연’이 됐지만 여전히 ‘조연의 마음’을 간직한 배우 진선규. 조연에서 주연으로 ‘신분 상승’한 선배 격인 송강호·유해진처럼 진선규 역시 충무로의 간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생머리가 어색한데 머릿결이 좋아보이셨다.


체육 선생님을 꿈꾸던 진선규는 고3 시절 고향인 경남 진해의 작은 극단에 방문한 뒤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좀처럼 고향을 벗어나지 않던 진해 촌놈은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진학했고, 2004년부터 연극을 시작했다.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영화판에 데뷔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며 단역을 전전했다. 


그러다 2017년 영화 ‘범죄도시’(연출 강윤성)를 만났다. 스스로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손꼽는 작품이다. 장첸의 오른팔 위성락 역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진솔한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됐다. 민머리의 험상궂은 마스크로 잔악무도한 짓을 눈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는 연기를 펼치며 실제 조선족이란 오해도 받았다. 민머리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사실 진선규는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선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머리를 밀고 다시 한 번 도전한 끝에 흑룡파 2인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영화 이후 오디션을 전전하던 배우 진선규는 "시나리오 좀 보실래요?"란 말을 듣는 배우로 역전한다.

 

마라탕이 생각나는 비주얼이다.


2019년 천만영화 ‘극한직업’(연출 이병헌)에선 마봉팔 형사 역을 맡아 주연급으로 활약했다. 마봉팔 형사가 말만 하면 관객석이 빵빵 터졌다. 같은 해 ‘롱 리브 더 킹’에선 올백 머리 악역 조광춘으로 서늘한 연기를 보여줬다. ‘사바하’의 해안 스님, ‘승리호’의 타이거 박처럼 분량에 상관없이 개성 있는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공조2’에선 빌런 장명준 역을 맡아 현빈과 대립했다. 악역에서 선역, 코미디에서 범죄 스릴러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어떠한 역할도 단단하게 보여주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다. 

 

안되겠다. 오늘 밤도 치킨이다.


‘카운트’는 올해로 연기 인생 20년을 맞은 진선규가 받은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우선 영화의 모델인 금메달리스트 박시헌과 여러모로 닮았다. 진선규 스스로 "시헌 쌤(선생님)과 내면의 싱크로율은 90% 이상"이라고 할 정도. 작중 시헌은 금메달을 목에 걸지만, 편파 판정 논란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나라 망신시킨 뻔뻔한 놈’으로 전락한다. 권투를 그만두고 체육 교사가 된 시헌 앞에 복싱 유망주 윤우(성유빈)가 나타나고, 시헌은 진정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복싱부를 창단, 다시 한 번 꿈을 향해 도전한다. 진선규는 "‘은메달만 땄더라면 좋아하는 복싱을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란 시헌 쌤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고 했다. "무너지고 나서도 자신이 행복한 걸 계속하며 꿈을 이뤄나가는 느낌이 비슷해요. 저도 연기가 좋아서 주위의 많은 사람과 함께 꿈을 이뤄나가고 있거든요."

 

함께 정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학생 역 중 진선규와 5살인가 밖에 차이나지 않는 배우가 있다고 한다. 누군지 찾아주세요.


진선규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너와 나의 계절’에선 가수 김현식으로 분한다. 역시 주연이다. ‘달짝지근해’에선 유해진, 김희선, 차인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돋보이는 위치에 섰지만, 진선규는 여전히 주변을 둘러보는 연기자다. 이번 영화에선 단역들과도 일대일 리딩 시간을 가졌다. 진선규는 "주인공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영화에 나오는 모든 분과 대화하고,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거였다"며 "영화는 협업 과정이란 걸 보이고 싶었고, 내가 부족하더라도 그분들을 통해 채워지게 돼 좋았다"고 강조했다. 진선규의 다음 종착지는 어디일까. "전태일처럼 불공평한 사회에 반하는 정의로운 역할을 하고 싶어요. 멀고 먼 얘기지만 멜로도 하고 싶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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