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워서 올리는 리뷰 - 서올리
재난을 막으려면 문을 닫아야 한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 스즈메는 우연히 청년 소타를 만나고, 일본 각지 폐허에 있는 문을 닫기 위한 모험에 뛰어든다.
그들이 문을 닫지 않으면, 열도 곳곳이 지진으로 흔들린다는 점에서 목숨을 건 문단속. 스즈메는 의자로 변해버린 소타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여정을 떠나고, 엄마를 잃어버렸던 12년 전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8일 개봉하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세 번째 천만 영화(일본 기준)다. 순수하고 절절한 사랑, 재난을 막기 위한 모험 등 감독이 천착해온 스토리를 고루 갖춘 ‘신카이 월드 종합판’이다.
볼거리는 더 풍부해졌고 속도감은 더 강화됐다. 감독 스스로 “애니메이션의 쾌감을 총동원하고 싶었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의 첫 천만 영화이자 한국에서도 379만 관객을 모은 ‘너의 이름은.’에 비해 스케일도 커졌다. ‘너의 이름은.’이 한동네 사람들을 살리려 동분서주했다면, 이번 작품은 일본 전체를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반드시 너를 찾아갈 거야’란 감독 특유의 첫사랑 감성은 ‘너를 구하고, 세상도 구할거야’로 진화했다. 소타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는 위험도 불사하는 스즈메의 모습은 오르페우스 신화가 연상된다. 문 하나를 열면 펼쳐지는 아득한 저세상이 보여주는 영상미는 압권이다.
여러모로 스즈메의 여정은 재난이 일상이 된 열도의 땅을 보듬고 위로하는 애도의 오디세이로 느껴진다. 스즈메가 재난의 문을 닫기 위해 일본 규슈(九州) 지방부터 고베(神戶), 도쿄(東京), 자신의 고향이자 마지막 종착지인 도호쿠(東北) 지방 이와테(岩手)현까지 일본 열도를 가로지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이와테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받은 곳 중 하나다. 스즈메의 눈엔 폐허가 된 놀이동산에서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이 보인다. “잘 다녀오겠습니다”가 “잘 다녀왔습니다”가 되지 못한 이들의 아픔과 생의 의지가 관객에게 전달된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지진 알람 메시지는 일본의 현주소이다. 신카이 감독은 “버려지고 방치된 장소에 대한 애도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질리도록 파란 바다, 새하얀 뭉게구름 등 환한 빛이 비치는 풍경 묘사는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소타가 변한 다리 세 개 달린 의자나 말을 하는 고양이 ‘다이진’ 등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귀여운 상상력도 살아 있다. (다리 하나가 없는 의자로 설정한 이유가 귀여웠다.)
다만 스즈메를 포함한 인물들의 모험에 집중한 탓에 ‘신카이 마니아층’을 만들기 시작한 ‘초속 5센티미터’의 여백 가득한 서사와 미세한 감정 표현, 그리고 감독의 시그니처인 감정의 응축과 폭발, 짙은 여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실은 절대적으로 덜하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21년 만에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으로 수상은 불발에 그쳤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보여준다. (인정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계승자란 느낌이 물씬 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