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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Mar 04. 2023

말러 '아다지에토' <헤어질 결심>의 사랑의 메타포

주말에 하는 되새김질 리뷰 - 주되뷰


영화에서 음악은 인물의 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때로는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그렇다. 해준(박해일)이 ‘붕괴’를 토로하고, 서래(탕웨이)가 해준과 ‘호흡’을 포개는 장면. 서로의 감정이 교차되고 증폭되는 순간마다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쓸쓸함과 비애감을 지닌 현악 선율이 흐른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 속 비발디의 칸타타처럼 클래식 활용엔 도사다. 무엇이 말러의 음악을 영화 속으로 이끈 걸까.



◇말러 ‘아다지에토’는 아내 알마에 대한 불안감 섞인 연애편지


말러의 중기를 여는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현악기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에 하프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이 더해진 명곡이다. 당시 41살이던 말러는 22살 알마에게 반했고, 그녀에게 이 곡을 바치며 결혼에 이르렀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기에 이 곡은 중년 남성인 말러가 젊고 아름다운 알마에게 바치는 연애편지이자 사랑 고백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듣다 보면 마냥 설레는 사랑 노래로만 들리지 않는다. 고독감과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은 바그너의 이뤄질 수 없는 두 남녀의 비극을 다룬 ‘트리스탄과 이졸데’ 모티브가 활용됐고, 마지막 부분 침잠하는 듯한 베이스 파트의 선율은 뤼케르트 시에 붙인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히고’에서 따왔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아내 알마 말러



사랑 노래에 우울이 한 스푼 들어간 이유가 뭘까. 이미 음악가로서 우주를 품고 내적으로 고독했던 말러는 젊고 아름다우며 외향적이었던 알마와는 내면세계를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 아닐까.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사랑할수록 불행을 예감하는 양가적 심리. 작품이 암시한 대로 말러의 결혼 생활은 알마의 남성 편력과 말러 자신의 편집증적 성향으로 인해 불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의 양가적 사랑의 감정은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만나 극대화된다.



◇‘헤어질 결심’ 3번의 ‘아다지에토’…해준 ‘붕괴’·서래 ‘호흡’과 맞물린 사랑의 메타포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양가적 심리를 지닌 아다지에토를 적극 활용한다. 총 3번 등장하는데, 서래의 남편(유승목)이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산을 타며 말러 교향곡 5번을 들으면 좋다”고 할 때 흐르는 첫 번째 아다지에토는 설명적 역할만 한다. 영화 속 아다지에토의 쓰임에 관해 주목할 지점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등장 장면. 각각 해준과 서래의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암시하는 주요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해준은 용의자인 서래에게 사랑을 느끼며 “당신 때문에 완전히 붕괴됐어요”라고 말한다. ‘붕괴’의 사전적 의미는 ‘무너지고 깨어짐’이다. 서래는 해준의 이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으로 인해 주체가 무너지고 깨어지는 과정이니까. 다만 서래를 좋아할수록 형사로서 해준은 무너져 간다는 점에서 자기파괴적이다. 결국 이때 흐르는 아다지에토는 해준의 자기파괴적 사랑 고백이다.


아다지에토는 해준과 서래가 호송 차량에서 얘기 나누는 회상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은 서래의 곁에서 곤히 잠든다. 서래가 해준의 호흡에 자신을 맞춰, 둘의 호흡이 포개지면서다. 이후 서래는 “깊은 바닷속에 던져서 찾을 수 없게 하라”는 해준의 말을 실천한다. 해준은 서래의 (헤어질) 결심을 뒤늦게 깨닫지만, 늦었다. 마지막 아다지에토는 서래의 사랑 고백이자 헤어질 결심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포스터



◇박찬욱이 겁냈던 ‘원조’ 비스콘티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 곡은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년)에서 활용돼 인기를 얻었다. 박 감독이 이 영화의 명성 때문에 아다지에토를 활용하기 주저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작곡가 구스타프 아셴바흐(더크 보거드)는 베니스에 요양 와서 미소년 타치오(비요른 안드레센)를 보고,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미(美)의 극치를 발견한다.


아셴바흐의 타치오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의 시선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마다 아다지에토가 흐른다. 아름다운 소년에 대한 황홀감과 늙고 지친 자신을 대비한 절망과 비탄의 정서가 섞여 있다. 아셴바흐는 타치오의 아름다움을 놓기 싫어 콜레라가 창궐하는 베니스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 전염병에 걸리는데 죽는 순간까지 타치오를 바라본다. 열렬한 사랑인 동시에 죽음을 예감하는 비극적 심리가 말러의 선율을 타고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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