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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토아부지 Feb 08. 2023

수많은 소희들에 대한 애도…<다음 소희>

서러워서 올리는 리뷰 - 서올리


어떤 영화는 살아있음이 미안해지도록 만든다. 2017년에 있었던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사회 고발 영화 ‘다음 소희’(연출 정주리·8일 개봉)가 그렇다. 영화는 당차고 해맑은 여고생 소희(김시은)를 중심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병폐와 콜센터의 감정노동 문제를 꼬집는다. 영화는 시선을 사회 시스템 전체로 확장해 소희의 비극에 우리 모두가 책임 있음을 설득해내면서 수많은 지나간 소희와 미래의 ‘다음 소희’에게 애도를 바친다.



영화의 구성은 특이하다. 1부와 2부가 나뉘어 각각 소희와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는 형사 유진(배두나)이 극을 끌고 간다. 1부에선 누구보다 명랑했던 소희가 죽음으로 내몰리기까지 과정을 다룬다면 2부는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존재는 과연 누구였는지 관객이 성찰하도록 이끈다.



소희의 사인은 자살이지만, 그녀를 죽인 건 사회다. 영화는 특성화고와 콜센터, 현장실습이란 병폐와 교육청·교육부 등 사회 제도 시스템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음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 1부에선 명랑하고 당찬 여고생 소희가 학교 취업 연계 현장실습으로 간 콜센터에서 가혹한 감정노동으로 모멸감을 느끼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사람의 감정보다 성과가 중요하고, 실적에 따른 성과급이 중요한 ‘사회’에서 소희는 점차 생기를 잃어간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싶단 얘기에 묵묵부답인 담임선생님과 가족, 고민 한번 들어주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더해져 소희는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군수관리단 파워박수 시간이 생각난다.


신예 김시은은 장편영화 첫 주연작에서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소희를 인상적으로 연기한다. 점차 창백해지는 소희의 얼굴 이미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소희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정 감독은 “이 시대 많은 소희들이 영화 속에서라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희의 행적을 추적하는 유진은 형사라기보단 기자나 PD에 가깝다. 소희의 담임선생님과 콜센터 관계자들 등을 향해 조목조목 그들의 책임을 지적하는 유진의 목소리는 통쾌하지만 설명적이다. 어떤 면에선 감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교육청 장학사가 “적당히 하자. 교육부까지 가실 거냐”고 묻는 장면에서 유진은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분노와 모멸감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는 배두나의 표정 연기는 ‘말문이 막히는’ 관객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시린 발 끄트머리에 닿은 빛


‘다음 소희’가 유효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고발하려는 현실 덕분이다. 어린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방관하는 특성화고의 현장실습 시스템, 더 나아가 약자인 청소년을 죽음과 절망으로 모는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반복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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