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시름 앓다 올리는 리뷰 - 시올리
지나간 사랑은 낙엽과 같아서
다행히 밟아버리면 그만이다.
너로 인한 잔여물은 섞이지 않아 여전히 너로 남는다.
그런 널 난 온전히 버릴 수밖에 없으니.
우리의 사랑을, 사랑이 지나갔음을, 어쩌면 거기 그대로 있음을 원망하는 수밖에.
너의 흔적이 섞일대로 섞여서
이제 그게 너였는지 아닌지도 모를 수준에 이르렀을 때,
불현듯 넌 나에게 다가왔고,
그럼에도 난 너였다고 확고히 장담할 수 없었는데.
그렇다면 지나간 사랑이란 건 낙엽과 같아서
다행히 밟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지나간 사랑은 모두 실패담이다. 그렇지만 실패로 새겨지지 않는다. 추억은 미화되어 무화된다.
-'라라랜드' 단상
영화 '바빌론'에서 '라라랜드'의 마무리는 다시 쓰인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고슬고슬 고슬링 세바스찬이 엠마 미아를 본다. 이 순간 영화는 억지스런 사랑의 결실보다 소박하며 거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을 거슬러 우리의 시간을 다시 아로새긴다는 상상. 현실을 넘어서는 판타지로서 영화. 세바스찬과 미아가 가정을 이뤘다는 순간의 가상이 기록매체인 홈비디오로 만들어진다는 모순적 아련함.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행복은, 우리는 현실을 넘어섰다.
'라라랜드'가 그들/우리의 서사를 다시 썼다면, '바빌론'은 칼바 매니의 추억으로 시작해 영화사를 아로새긴다. 그리고 정반대의 결말에 닿는다. 억지스런 개인의 회한과 애수보다 거대하지만 소박한 영화란 결실. 판타지를 거슬러 우리/그들의 영화사를 다시 아로새긴다는 상상.
'라라랜드'가 개인적 회상을 통해 판타지로서의 영화가 현실을 넘어섬을 보였다면, '바빌론'은 집단적 회상을 통해 판타지를 디딤돌 삼아 영화란 현실에 투신하며 "진짜 대단하지! 영화란 건!"이라고 외친다. 이 순간 다시 쓰인 '라라랜드'는 쪼그라들고 푸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