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이를 바꾸지 말자. 그 대신 따라가 보자"
세상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서준이는 그저 고독한 섬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무것에도 마음이 닿지 않는다. 말도 하지 않는다. 놀이도, 장난감도, 과자조차도. 글씨 쓰기도, 책 읽기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세상의 시간은 흐르지만, 서준이의 시계는 멈춘 듯했다. 그 정지의 공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도달할 수 없음’이라는 벽 앞에 섰다.
처음부터 길을 잃었다. 숫자 쓰기, 한글 쓰기, 기차놀이, 공 던지기… 무엇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내 말은 공중에서 흩어지고, 손끝의 온기도 닿을 수 없었다. 희미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섰다. 그때, 나에게도 가장 깊은 밤이 찾아왔다. 마치 낯선 행성에 홀로 불시착한 우주인처럼 막막했다.
가만히 앉은 아이는 화가 난 얼굴로, 울음을 삼키며 버텼다. 그 표정 속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서준이가 즐거워하는 것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일이었다. 그 춤사위는 세상의 소음을 피해 오직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주파수에 맞춰 움직이는 안테나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공부가 아닌 것’이라 여기며 망설였다. 그러다가 마음을 바꿨다.
“서준이를 바꾸지 말자. 그 대신 따라가 보자.”
그날부터 나는 서준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서준이가 춤을 추면 나도 따라 췄다. 서준이가 시선을 돌리면 나도 같은 곳을 보았다. 서준이가 손끝으로 공기를 가르면, 나도 그 결을 따라서 해 보았다. 손끝을 쫙 펴면 나도 똑같이 폈다. 그제야 고개 숙인 얼굴에 아주 가느다란 실금처럼 미소가 번졌다. 말이 없던 아이는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서준이는 나를 자신만의 세계로 조용히 이끌었다.
핼러윈 램프를 샀다. 서준이가 들고 다닐 수 있는 등불 놀이를 제안했다. 하지만 서준이는 나의 생각을 뒤집었다.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분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뚜껑을 뽑고, 옆면에 달린 줄을 없애려 했다. 손을 다칠까 염려되어 가위를 들어 대신 잘라주려다, 나는 멈췄다.
“서준아, 이렇게 자를까?”
말을 건네며 천천히 기다림의 숫자를 세어 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때 서준이가 손을 흔들며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미리 만들어 둔 ‘좋아요’와 ‘싫어요’ 글자카드를 서준이 앞에 슬며시 밀었다. 서준이는 주저함 없이 ‘싫어요’를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순간이었다. 그 작은 손끝에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마치 수십 년 닫혀 있던 고대의 비밀잠금이 열리는 것처럼. 나는 놀라움과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가위를 건넸다. 서준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가위의 고리에 끼웠다. 그리고 나와 함께 아주 천천히, 여러 번을 잘랐다. 다 자르고 나니 등불의 뚜껑이 모자처럼 보였다.
서준이의 머리 위에 살짝 얹었다.
“와, 모자가 되었네!”
그때, 서준이는 낯선 감각의 불편함을 느꼈는지 곧 등불 뚜껑을 내렸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까. 등불 뚜껑을 내 머리 위에 올려놓고 서준이의 시선을 끌었다. 오렌지빛이 따뜻한 색감으로 환하다. 서준이는 그 빛 속에서 나를 보았다. 순간, 처음으로 두 세계가 같은 온도로 닿았다.
“서준아, 선생님도 모자 썼네!”
서준이는 내 머리 위의 등불 뚜껑을 조심스레 가져가 자신의 머리 위에 얹었다.
“와~ 서준이도 모자 썼네!”
그 순간, 서준이의 입가에 기쁨의 빛이 번졌다. 마치 해가 뜨기 직전 수평선에 걸린 첫 번째 아침별처럼. 아주 작고, 아주 조용한 미소였다.
손가락 인형을 보며 서준에게 물었다.
“이거 정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러자 서준이는 순식간에 인형을 지갑 속에 넣었다.
“지퍼도 닫아야 하는데, 어떻게 닫지?”
서준이는 망설임 없이 지퍼를 닫았다. 놀란 가슴이 두근거렸다. 순간을 잇고 싶었다. 다시 색깔 컵 여러 개를 꺼내 여기저기 흩으며 물었다.
“서준아, 여기 색깔 컵도 정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서준이는 크기를 맞추며 차례로 넣기 시작했다. 맞지 않으면 꺼내어 다시 넣고, 빠진 컵이 있으면 찾아 마무리했다. 서준이의 손끝은 세상의 질서를 찾아 제자리를 잡아가는 건축가의 손과 같았다. 서준이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방 안의 공기마저 반짝였다.
그 미소는 세상의 어떤 말보다 환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아이는 세상을 외면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연결된 존재임을.
어른이란 아이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 곁에 머물며 새벽을 함께 견디는 일이었다. 나의 긴 터널 끝에 아이가 새벽을 열었다. 그날, 내 마음에도 빛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 아이의 새벽이, 내 안에도 오고 있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지명은 가명이며, 일부 내용은 각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