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 이데아를 꿈꾸는 스승과 대지를 딛는 제자, 그 사이의 눈부신 반항

by 달빛

홀로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골몰하는 청년 제자가 있다.

그 곁에서는 여기저기 흩어져 두세 명씩 마주 선 채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곳은 아테네의 학당, ‘아카데미아’다. 올바름의 정의를 두고 용기와 절제, 지혜를 말하는 주장들이 팽팽히 맞선다. 60대 원장 플라톤의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사유의 열기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스승의 손가락은 무지개 너머의 성과 같은 ‘이데아’를 향해 하늘을 가리키고, 제자의 손은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단단한 흙의 감촉을 증명하듯 땅을 향한다.


청년 제자는 스승의 진리 탐구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하늘이 높아서 이상이 높은 것인지, 이상이 높아서 하늘이 높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을 연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면 공정한 법으로 다루어야 하고, 인간의 행복은 현실 속에서 가치 있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눈부신 이상보다, 지금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승님, 이데아만이 진리의 전부는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네 사유를 펼쳐 보아라.”

청년 제자는 현실의 문제는 현실에서 풀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람 사이의 갈등과 삶의 무게는 땅 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 플라톤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에 잠시 당혹해하지만, 그는 스승의 가장 각별한 애제자가 아닌가. 하늘과 땅이 마주 보아야 비로소 세계가 온전한 구(球)로 완성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또한 스승에게 반항했다. 스승이 철학의 비법을 책으로 펴내자 그는 서운함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스승님, 저에게 알려 준 비법을 책으로 내시면 그건 더 이상 비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승은 답했다.

“제자야, 책으로는 지식을 얻을 수는 있어도, 우리가 마주하며 나눈 질문과 깨달음 속의 지혜까지 전할 수는 없단다.”


이처럼 스승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서였다. 한 회원분이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연구를 시작한 아들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아들이 현지 연구실에서 처음 자기소개를 하던 날의 일이었다. 그의 이름은 외국인에게 발음하기 어려운 철자였다. 조금만 어긋나도 ‘동’이 ‘똥’이 되어 버렸다. 동료들은 계속해서 틀리게 불렀고, 그는 그저 웃어넘겼다. 한국에서도 익숙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도 교수는 달랐다. 정확한 발음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불러 주었다.


“이름은 너의 정체성이다.”

그 한마디에 흐릿해졌던 이름이 선명해졌다. 지도 교수의 배려 속에 이름의 철자들이 비 온 뒤의 풍경처럼 맑게 씻겨 나갔다. ‘똥’이라 불리며 구겨졌던 자존감도 비로소 빳빳하게 펴졌다. 정체성의 존중은 그를 단단하게 세웠다.


자존감이 자리를 잡자 두려움도 사그라들었다. 어느 날 연구실에서 논문 토론이 벌어졌다. 동료의 논문에는 붉은 줄이 빼곡했다. 이를 받아 든 동료는 지도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논리로 쓴 글이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항의였다. 지켜보던 그는 사태가 심각해질까 겁을 먹었지만, 교수의 반응은 의외였다.

“왜 다른지, 근거를 가지고 다시 반박해 보게.”

질문과 반박은 무례가 아니라 학문의 정당한 방식이었다.


10년 전쯤, 물리를 좋아하던 아들이 일본에서 공부할 때였다. 시험 문제 하나가 틀린 것으로 채점되어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교수를 찾아가 말했다.

“이 부분은 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는 몇 권의 책을 펼쳐 확인했다. 시간이 길어지는 사이, 확신은 흔들리고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내 교수는 문제를 짚으며 말했다.

“자네가 맞네. 내가 미안하네.”

권위를 앞세우지 않은 그 투명한 사과야말로, 진리를 다루는 학자의 참된 품격이었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다른 학생 두 사람이 시험지를 들고 들어왔다. 점수가 부족하니 부분 점수를 더 줄 수 없겠느냐는, 사정에 기대는 '부탁'이었다. 앞선 아들의 '질문'이 객관적인 근거 위에 단단히 서 있었다면, 이들의 '부탁'은 개인의 상황에 위태롭게 기대어 있었다. 논리와 읍소 사이의 간극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교수실 문을 나섰다고 한다.


수천 년 전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교육의 산실로서 그 정신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권위를 내려놓은 치열한 소통 덕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 만나 생각을 나눌 때 비로소 사고의 깊이를 더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촌에서 어부와 대화하고 생선을 관찰하며 학문을 쌓았다. 그가 쌓아 올린 방대한 학문의 탑은 스승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현장에 대한 치열한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늘을 꿈꾸되 땅을 잊지 않았던 사람들. 나는 지금, 누군가의 하늘을 기꺼이 뒤흔드는 청년 제자의 눈부신 반항아로 살아가고 있는가. 깊어가는 밤, 그 질문이 나에게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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