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오는 것이다

: 경쾌하게 아삭하게 부서지는 파열음의 맛

by 달빛

‘바삭바삭, 와그작와그작’ 쉴 새 없다. 내 무지는 늘 입술 끝에서부터 바스락거린다.

딱 3개만 맛보려던 다짐은 간데없고, 손가락은 어느새 열 번째 봉지를 거침없이 비집고 들어간다.


강의는 길기만 하고, 이해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길을 아는 말 한마디가 이토록 간절할 줄이야. 야속하리만치 무심한 설명 앞에 마음만 조급해지는데, 모니터 속 교수님의 목소리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귓가를 훑고 지나간다. 화면 위로 쏟아지는 복잡한 수식과 통계 자료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글자보다 숫자가 더 많은 강의 자료는 마치 내가 해독할 수 없는 암호문처럼 보였다. 잘게 부서지는 과자 부스러기에 옹졸한 원망을 섞어 씹는다.


3월은 시작의 계절이라지만, 내게는 매번 길을 잃는 계절이다. 글쓰기 안내자인 나에게도, 사이버대 신입생인 나에게도 잔인하기만 하다. 학생들에게는 서울 구경 가려면 동대구역부터 가야 한다고 그토록 다독였건만, 정작 내 앞의 안갯속에서는 낡은 지도 한 장 읽어내지 못하는 길치가 되어 있었다. 가르치는 마음은 거침없는 고속도로였으나, 배우는 마음은 덤불 우거진 오솔길이었다.


나의 강의 듣기는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급기야 허겁지겁 노트북을 켰으나, 화면 위로 쏟아지는 숫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뿔싸, 강의 시간이 무려 2시간이라니! 모니터 너머로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루에 하나씩만 들으면 된다던 달콤한 속삭임은 간데없고, 어떤 강의는 일반 강의 자료의 5배에 달하는 분량을 성난 파도처럼 쏟아낸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어 밀린 강의를 하나씩 소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주친 ‘4주 차 세미나’라는 공지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모니터 속 '세미나'라는 세 글자는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처럼 나를 압도했다. 마우스를 가져다 대는 것조차 커다란 용기가 필요해, 나는 한참 동안 멈춘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학기, 평균 80점에 단 1점이 모자라 장학금 경고를 받았던 기억은 내 등에 박힌 차가운 얼음 파편 같았다. 그 트라우마가 유령처럼 살아나 서늘하게 척추를 훑고 지나갔다. Zoom인지 실습인지도 모른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내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이 세워진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비장의 카드인 선배에게 물었다. 답장은 허탈하리만치 명쾌했다. 폭풍 전야의 먹구름처럼 나를 억누르던 공포는 선배의 피드백이라는 바람 한 점에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엉킨 실타래의 끝을 찾아 스르르 풀어내자, 날카롭던 숫자들은 어느새 꼬리를 흔드는 순한 양처럼 내 곁으로 다가왔다. 사투를 준비했던 세미나는 안방의 온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다정한 초대장이었다.


나는 익숙한 안내조차 투덜거림이라는 짙은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외면하고 있었다. 수필과지성 글동무들이 처음 펜을 잡고 마주했을 그 막막한 절벽이, 이제야 내 살갗을 파고드는 서늘한 감각으로 치환되었다. 이해는 억지로 움켜쥐는 전리품이 아니라, 견뎌낸 시간 사이로 은은하게 스며드는 새벽빛 같은 것이었다.


"그때 그것이 그 뜻이었어!"

무릎을 치는 찰나, 경험이라는 열쇠가 낡은 고정관념의 빗장을 경쾌하게 열어젖혔다. 머릿속을 꽉 채웠던 고정관념의 껍질이 과자처럼 경쾌하게 부서졌다. 비로소 이해의 파열음이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발걸음이 길을 만든다. 깨달음의 아삭거림 덕분인지, 입안에 남은 소금기가 유독 달큰하고 맛나다. 어금니 사이에서 부서지는 과자 조각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의 파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굳어 있던 고정관념의 껍질을 기분 좋게 깨부수는 경쾌한 축제의 파열음이었다. 마지막 조각이 입안에서 녹아내릴 즈음 도어록 소리가 정적을 깨고, 몰래 간식을 즐기다 들킨 못난 엄마의 모습에 아들이 환한 미소를 건넨다.


“많이 드시면 몸에 해로워요. 절대로 아까워서는 아니에요.”

장난기 섞인 아들의 목소리가 거실의 공기를 순식간에 달콤하게 바꾼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지만, 그 아삭한 이해는 가끔 이토록 고단하게 길을 헤맨 뒤에야 선물처럼 도착한다. 스트레스의 부스러기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비워진 봉지 사이로, 아들의 다정함이 하얗게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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