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조적 자아를 가로막는 적
조.현.병.
조현(調絃)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된 정신분열증의 수정된 명칭이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어깨는 죄지은 사람처럼 잔뜩 움츠리고, 바닥을 향한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갸름했던 그녀의 얼굴형은 살이 찐 듯 부은 듯 둥그스름해진 데다 얇은 검은 안경테 너머로 양 볼과 눈언저리에 도화꽃처럼 상기된 붉은 기운이 보였다. 의자에 앉으라는 말에 측면 벽을 바라보며 몸을 틀고 고개를 떨구고 앉는 그녀. 베이지색 봄 점퍼 옷깃 아래로 묶인 긴 갈색 머리카락이 구부정하게 굽혀진 그녀의 등 너머로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근 3주 코로나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내 주변 안팎을 더듬으며 훑고 갔다.
처음엔 대학생인 큰아이가 밤늦게 미열이 나고 코가 막힌다 했다. 자가 키트로는 음성이었다지만, 다음날 중학생인 막내가 콧물과 가래가 있다기에 음성 확인서를 가지고 학교 가는 게 안심이 될듯해서 등교 전 근처 의원에 들러 신속 항원검사를 했다. 단순 감기 증상이라 당연히 음성이겠지 했다. 임신 테스트기 같은 하얀 플라스틱 시약 판을 따라 검사액이 흘러가며 붉은 두 줄을 선명하게 만들어내자 몹시 당황스러웠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한의원은 어떻게 하지? 였다.
이주 전 토요일 오전 일을 마치고 건강하게 인사하며 한의원 문을 나섰던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0일 만에 마주한 그녀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아니, 딴사람이 되어 나타나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자가 격리해야겠다고 전화 왔을 때만 해도 함께 확진된 아들 돌보며 일주일 쉬었다 나오겠다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3번 돌아 다시 봄이 온 지금까지 한 번도 개인적 용무로 결근한 적이 없던 친구라, 아르바이트 선생님을 급하게 구해볼 것이니 이참에 푹 쉬었다 나오라 했다. 간간이 통화할 때도 일상을 변함없이 전하던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비록 현재 내가 코로나 음성이라도 다른 가족들 상황을 체크해야 했다. 상태에 따라 나 역시 출근을 미룰지 아니면 확진된 아이들과 별도로 격리를 하며 지켜볼지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큰아이와 다른 가족에게 전화해서 신속 항원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열이 났던 큰 아이는 의심했던 대로 양성이었고, 다행히 다른 가족은 음성이었다. 바로 첫째와 막내를 집에 격리하고, 음성인 가족들을 한의원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게 하였다. 감염 경로가 집안 내부인지 외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코로나바이러스가 스쳤던 곳에 함께 머문다면 별도의 방에 격리한다 해도 다른 가족들의 감염은 시간문제일 뿐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여 추가로 확진자가 생기면 집으로 들어가면 되니, 오히려 간단했다. 무엇보다 큰아이가 집에서 보호자 역할을 해주리라는 믿음에 망설임 없이 결정한 듯싶다.
심리적으로 괴로움이 있는 사람은 육체노동이나 운동을 하면 오히려 마음의 병이 호전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적절하게 규칙적으로 몸을 쓰다 보면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무는 늪과 같은 망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병이 있는 사람이 부정적인 사건이나 상황에 집착되어 있다 보면 자신의 존재는 보잘것없게 느껴지고, 부정적 상황으로부터 파생된 망상들이 자신을 집어삼켜 버리기 쉽다. 경제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남편과 이혼하고 그녀 홀로 아들을 키우며 나름 씩씩하게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눈조차 맞추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보며, 자가격리가 끝났는데도 출근하지 않는 그녀를 원망했던 마음이 미안해지려 했다. 보호자로 함께 온 시누로부터 그간의 이야기와 함께 코로나 자가격리로 인해 우울증과 조현병이 재발한 것으로 진단을 받아 당분간 치료에 전념해야 할 듯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말 수는 없었지만, 매사에 똑 부러졌던 그녀는 어디로 가버렸나? 시누가 불러주는 대로 불안한 눈초리로 사직서를 쓰고 있는 그녀가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첫째와 넷째의 재택격리 3일 후 원룸에서 따로 지내던 셋째가 몸 상태가 좀 이상한 듯하다 해서 PCR 검사를 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게 했다. 남은 둘째에게도 그냥 집으로 들어가서 같이 코로나에 걸리고 함께 낫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보았다. 둘째는 다음날 친구와 마라탕을 먹기로 약속했기에 끝까지 코로나에서 살아남겠다 한다. 자식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야하는 부모가 너도 함께 감염되라고 말하고 있는 이 모순된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불특정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나는 더욱 주의하며 그날부터 꼬박 10일간 세 집 살림을 했다. 격리 자를 위한 집, 비감염 자를 위한 원룸 그리고 ‘나’를 위한 한의원.
그런 시간을 건너면서 그녀를 마주했다. 처음 그녀의 상태를 알았을 때 황망하고 당황스러워 내 정신 줄도 너덜너덜 풀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남은 선생님과 갑작스럽게 비워진 그녀의 자리를 함께 메우며 후임자를 알아보고, 아이들을 챙겨야 했기에 오히려 더 팽팽하고 단단하게 마음 줄을 감아야 했다. 덕분에 6명 가족 중 절반은 더 이상의 감염없이 안전하게, 절반은 재택격리를 끝내고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한의원도 다음 주부터는 새 직원이 출근한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누적 확진자가 5천만 전 인구의 4분의 일에 육박해가고 있다.
안 걸린 사람은 사교성이 떨어진 사람이라느니, 로또를 사야한다느니 하는 우스갯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그만큼 우리는 코로나와 뽀짝 일상을 걷고 있는것일 게다. 그러나 막상 안팎으로 오미크론과 한데 뒤엉켜 생존을 위해 뛰어다녀야 할 때는 아무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상의 안정을 어느 정도 찾난 오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 예술과 창의성은 무엇을 할 수있을까?
거리마다 아름답게 하얗게 핀 벚꽃을 그려보기도 하고, 팽팽하게 긴장하며 정신 줄을 감아야했던 지난 시간을 글로 쓰다듬으며 내 마음의 현악기 줄도 조금 느슨하게 풀어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예술은, 우리안의 아티스트는 부처님도 고(苦)의 바다라 한 우리네 삶을 잘 살아내도록 감기도하고 풀기도 하는 조율의 장인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