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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살청춘 지혜 May 14. 2022

나의 창조 다루기

화엄사 템플스테이 (2020년 겨울)

아티스트웨이 6주차: 풍요로움을 되살린다.

이번 주에 당신은 창조성을 막는 중요한 문제와 씨름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당신은 신과 돈, 풍부한 창조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고, 당신의 태도가 삶의 풍요로움가 만족감을 얽어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돈을 제대로 사용할 수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아마도 이번 주에 격렬한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눈을 떴다. 낯선 어둠이 그녀를 꼬옥 감싸 안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듯 그녀는 눈동자를 위아래로 굴리며 눈꺼풀을 깜빡였다. 등줄기를 따라 눅눅한 땀방울이 이슬처럼 맺혀있다. 구들장 온돌의 뜨끈함에 자신이 방바닥에 딱 붙어버린 늘어진 엿가락 같다는 생각이 들자, 풉! 하고 그녀는 실소했다. 그러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에 순간 숨이 멎은 듯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좌우로 고개를 돌리는 그녀. 노르스름한 한지 방문 살에 나른하게 엎드린 희미한 불빛을 보고서야 후~하고 길게 숨을 내쉰다. 어제 오후 느지막이 홀로 1박 2일 화엄사 템플스테이에 입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맡에 벗어둔 두툼한 외투를 주섬주섬 걸쳐 입고, 문고리를 더듬어 방문을 열었다. 철커덩 문고리 부딪히는 소리가 훅 덮쳐 오는 산속 새벽녘 찬 공기를 가르며 아리게 울렸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벽 등이 게슴츠레 켜진 대청마루로 나와 섰다. 동트기 전이 가장 캄캄하다 했던가? 어디가 하늘이고 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온통 시커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숨 쉴 때마다 그녀의 콧김과 입김은 하얀 나비가 되어, 블랙홀 속으로 날개 짓 하다가 이내 빨려들어 사라져 버렸다. 별도 달도 지붕마저도 삼켜버린, 그럼에도 빛을 잉태하고 있는 새벽 어두움은 마지막 진통을 기다리는 산모의 묵직함 그것이다. 빛과 어둠이 나뉘기 직전의 천지 창조도 이 새벽과 같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던 그녀가 이 순간이 흩어질세라 까치발을 하고 걷는다. 삐...그..덕. 삐.그...덕.... 마루를 지나 어제 절 수련을 했던 회합 실을 환하게 밝히고 앉았다.

 

일반 절 방의 4배가 넘는 길쭉하게 넓은 공간에 폭신한 노란 장판이 정갈하게 깔린 회합 실은 따뜻했다. 한 편에는 나무통 모양 그대로 세로로 길게 잘라 만든 좌탁이 있고, 좌탁 한쪽 벽에는 가볍게 읽을 만한 책과 메모지 그리고 잎 차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이를 언제든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푹신하고 널찍한 절방석을 내어 앉았다. 편안했다. 또로록... 찻물이 잔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마치 기도 전 울려주는 싱잉볼(Singing bowl)처럼 여운을 남기며 울려 퍼졌다. 따뜻한 차 한 모금 한 모금에 아직까지 자고 있던 세포들마저 기지개를 켜고 깨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편안한 회색 절복 바지와 흰색 티에 분홍색 조끼를 걸쳐 입고 푹신한 절방석에 반가부좌로 앉아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목적 없이 일상을 훌훌 털고 혼자서 훌쩍 떠나온 여행. 이렇게 나설 수 있는 것을 무엇에 그리 주저주저해야 했던가! 아이들 관리는 어떻게 하고? 다음날 근무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까? 집안이 엉망이 될 텐데? 남편이 탐탁지 않아 하는데? 혼자서 여행하는 여자를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는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 낯선 곳은 불편하고 위험해?... 바쁜 일상에 치여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도 막상 기회가 와도 포기하게 했던 수십 가지 이유를 떠올리며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혼자서 여행을 간다'란 프라이머리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에 맞서서 발목을 잡는 세컨더리 신념들... 모두 내가 지어내고 만들어낸 것이다. 세컨더리 신념들을 꺼내면 꺼낼수록 이미 잔뜩 쓰여 있는 마음의 흑판 위에다 자꾸 덧쓰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바닥 아래에 숨어 있는 진짜 세컨더리 신념은 뭘까?’ 

 

뜨거운 차를 호로록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녀를 비추고 있는 유리창 밖 짙은 어둠 사이로 소리 없이 눈꽃이 내려앉고 있었다. 멀리서 새벽 예불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들려오고, 종소리 여운에 밀려 검은 하늘이 시나브로 열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혼자 있어도 더는 외롭지 않다!



"모든 창조의 목적은 경험입니다.

자기가 이미 지어내 놓고는 그것에 맞서는 것을 또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반 창조를 멈추고 이미 지어낸 것을 정말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반 창조는 홀연 사라져 버리고 여태껏 줄곧 지어내려 애써오던 창조와 함께 있게 됩니다. 

창조가 나에게 내포될 때 나는 그 창조의 근원입니다. 그때는 나는 창조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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