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살 할머니와의 추억을 소환하다.
친할머니 김 만례 여사님은 105세까지 깔끔하고 건강하게 사셨다. 우리곁을 떠나신지 13년이 지났지만, 요즘 들어 할머니가 자주 생각 난다. 터울 없이 고만고만했던 우리 오 남매. 직장을 다니던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큰 손녀라 곁에서 살림 보조를 자주 해서인지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김 만례 여사하면 언제나 목련꽃처럼 정갈하고 꼿꼿하게 몸을 가꾸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얗고 긴 머리를 촘촘한 참빗으로 늘 곱게 빗어 은비녀로 쪽을 지고, 흰색이나 밝은 파스텔 톤의 상의와 긴 치마를 즐겨 입으셨던 할머니. 150센티가 안 되는 아담한 키에 검은 머리가 살짝살짝 섞인 흰머리를 늘 단정하게 쪽지고, 검버섯과 주름마저도 맑았다. 백 세가 가까워졌을 때도 여전히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속 꽉 찬 알토란같았던 그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한 이빨이 몇 개 없었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잘 삭힌 홍어를 틀니 없이 잇몸으로 꼭꼭 씹어 소화할 정도로 잘 드셨다. 하루 4끼 이상을 드시되 절대로 배부르게 먹지 않을 것. 그녀만의 철칙이었고, 텔레비전을 보며 앉아계시더라도 몸을 늘어지게 놔두지 않으시고 앉아서 발끝 부딪히기를 가만가만하실 정도로 적절한 긴장을 항상 몸에 유지하면서 잔잔하게 놀리셨다. 한의사인 내가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당신 몸에 밴 평소 생활 습관이 무척 건강하셨다. 그런 건강한 습관 덕분에 할머니는 장수하신 듯하다. 나 역시 꾸준히 운동하는 것을 즐기고 평소에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게다.
술도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께 처음 배웠다. 뭉근한 연탄불에 올려놓은 막걸리에 설탕을 넣고 살살 저어가며 끓이면 알코올은 날아가고 고소한 발효 빵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냄새다. 뜨거운 단술을 후후 불어 홀짝홀짝하노라면, 식도를 타고 위를 감싸며 장까지 이르는 긴 호스가 내지르는 환희의 탄성이라니... 할머니와 작은 소반을 마주하고, 건배~하며 끓인 설탕 막걸리 사발 부딪치는 소리에 단내나던 봄날이 그립다. 가끔 친구나 남편과 막걸리 한 잔 할 때면 어김없이 어릴 적 추억의 단내를 함께 마시곤 한다.
어느 날, 자꾸 많아지는 동생들이 귀찮아 결혼하면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하냐는 질문에 할머니께서는 “자식은 우리가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어야. 그래야 우리가 죽어도 자식들 속에서 살아 있는 거제.” 이렇게 철학적으로 답해주셨다. 할머니의 주문에 걸려 버린 걸까? 비혼주의에 딩크족(DINKs: Double Income No Kids)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나는 네 딸의 엄마다.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말 그대로 진하게 남겼다.
언제나처럼 집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나무 그늘에 앉았다. 바람결에 막걸리 단내가 나는 듯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수줍게 싹을 틔운 연둣빛 나뭇잎들 사이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은빛으로 빛나는 할머니의 말씀이, 할머니와의 추억이 열려있는 정원처럼 내 앞에 있었다.
'할머니도 지금 내 눈을 통해 보고 느끼고 계시겠지?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오메~ 새끼 넷 키울라 고생헌다. 그래도 잘혔다. 너도 니 딸들 속에서 영원히 사는 거여~잉.’라고 하실까? 백 살 넘게 사셨던 김 여사님은 내 안에 이렇게 함께 살아 계신다. 그리고 나는 이제 겨우 반백 년을 살았다.
이 봄이 가면 짙푸른 여름이 오고, 낙엽이 지고 겨울을 맞겠지? 가을 어디 언저리쯤 와있는 내 육신도 언젠가는 자연으로, 할머니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듯 나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딸들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한 나는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다.
"어쩌면 오늘
천년을 쉬고 있던 내 선조가 깨어나
내 핏속에 몸을 데우고
내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