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ade my day
나의 대학원 신입생 생활을 궁금해하며 j쌤이 연락했다. "학교 생활 어때요? 날도 선선해졌는데 시간 날 때 만나서 얘기 좀 들려줘요" 그래서 수업도 없고 별 다른 약속이 없었던 어제 광교에서 만났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기온이 21도 정도로 걷기 딱 좋았다. 백합을 잔뜩 넣은 칼국수를 맛나게 먹고 우리는 우산을 쓰고 호수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밥을 먹는 동안, 걷는 동안, 비 오는 풍경을 감상하며 앉아 있던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도 우리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학교 이야기, 그리고 그제 밤 내게 폭탄을 터트린 작은 아이 이야기 등등. 그녀가 오랫동안 몰두하고 있는 영어 리스닝 프로젝트가 어느 즈음에 와있는지도 들었다. 영어 공부는 전생애에 걸쳐해야 하는 일이니 그거 병행하면서 대학원에 오라고 꼬셨다. 마침 내년 상반기 신입생 모집 공고가 뜨기도 했고 말이다. 내 학교 생활에 관심도 많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나보다 먼저 상담대학원 진학을 생각했던 그녀라 열심히 꼬셔봤는데 안 넘어왔다. "거기 다단계예요? 왜 이렇게 꼬셔?"
그제 밤늦게 영어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나 진짜 진짜 영어학원 그만 다니고 싶어." 여름방학 무렵부터 징징대기 시작했는데 무시하고 "일단 그냥 다녀"라고 말해둔 상태였는데 정말이지 더는 못 다니겠다는 표정으로 사정했다. 그만 다니고 싶은 이유 열 가지를 말하라고 했더니 주절주절 열 가지를 채웠다. 선생님이 별로다, 애들이 너무 많다, 오답 설명이 부족하다, 그냥 학원만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 시간도 학원비도 아깝다, 예전처럼 집에서 엄마랑 하고 싶다.... 헉!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밤늦도록 대체할 학원을 알아보기도 하고, 집에서 공부할 교재를 알아보기도 하면서. 고민 끝에 일단 일주일에 이틀 정도 내가 옆에서 영어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도록 관리해 보고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결심을 그녀에게 말했더니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어쩜 그녀의 아들과 레퍼토리가 똑같냐면서. 그렇게 중1에 영어학원을 관두고 중등 내신이야 그런대로 넘겼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영어 내신 4등급을 찍었다며... 절대로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집에서 안 된다며... 그녀의 아들은 전국형 자사고에 다녔으니 내신 따기 워낙 어렵기도 했겠지만, 그녀의 만류에 마음이 흔들렸다. 일단 한 달만 해보고 시키는 거 제대로 안 하고 뺀질 대면 바로 학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이런 대화의 시간이 어쩌면 내게는 치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남편에게조차 하지 않는 이야기, 내게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도. 20년 가까이 그녀와 가깝게 지내면서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공유했다. 워킹맘의 고단함, 소속감 없이 지내는 전업맘의 서글픔, 불안한 미래, 낡아가는 몸, 어수선한 사회,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 내놓기 부끄러운 열등감, 아픈 가족 이야기까지. 그런 시간이 있었어서 지금의 나는 이나마라도 버티고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요즘 내가 겪고 있는 갱년기 발한 증상을 듣더니 나를 너무 잘 아는 그녀는 말했다. "쌤, 대학원 가길 잘했어요. 우울감이 우울증으로 되기 전에 자가 처방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잘한 것 같아요." 웃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 내리는 오후, 완벽하게 좋았던 시간, 카페 이름은 ymmd였다. "You made my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