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바이러스가 하는 일
그저께 아침, 배가 아프다는 아이를 등교시켜 놓고 오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서 수신 거부 처리를 해버렸다. 세 번이나 연속으로 오는 걸 받지 않았더니 아이 담임 선생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업 중이었지만 재빠르게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아이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며 조퇴를 시키고 병원에 가보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제가 지금 볼 일이 있어서 서울에 와 있는데... 아이에게 병원을 알려주고 혼자 진료를 보게 했다. 병원 이름이 뭐야? 내 주민번호가 뭐야? 진료확인서 받아야 해? 중1아이는 생애 최초로 혼자 병원 진료를 보느라 헤맸다. 가뜩이나 어려운 성격 심리학 수업 1교시를 어수선하게 흘려보냈다.
병원에서 진료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더니 상태가 괜찮아져서 혼자 집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제 많이 괜찮아졌다며 학교와 학원도 잘 다녀왔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 또 안색이 좋지 않았다. 구역감과 복부 통증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학교에는 병원 진료 보고 보내겠다고 문자를 보내놓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피검사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구역감을 힘들어하니 일단 수액을 맞고 등교를 시키라고 하셔서 수액을 맞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이맘때 아이들이 학업이나 교우 관계 스트레스로 이런 증상이 흔히 있다고 하셨다. 그러잖아도 아침에 "너 학교 가기 싫어서 배 아픈 거야?"라고 물었더니 화를 버럭 냈다고 얘기했더니 "원래 정곡을 찔리면 화내는 법이죠"라고 했다. 약을 바꿨으니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수액을 맞고 나서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보내놨다. 얼른 괜찮아져야 할 텐데...
아이는 그렇고, 나는 요즘 폐경이행기의 증상으로 추측되는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다. 생리가 20일 넘게 늦어지길래 워낙 최근 몇 년간 들쑥날쑥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2주 전쯤부터, 거의 대학원 입학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에어컨이 쾌적한 기온을 만들어주고 있음에도 갑자기 덥고 땀이 삐질삐질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외부의 열기 때문이 아닌 내 몸속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뻗어 나와 얼굴은 화끈화끈 땀이 줄줄줄.. 그런 현상이 불시에 벌어지는 것이다. 제법 가을이라 선선한데 싶다가도 후끈 달아올라버린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기이하게 바라본다. "하나도 안 더운데?" 자다가도 더워서 깨는 횟수가 많아졌다. 잠들기 전에는 이불을 꼭 덮고 자다 보면 어느 순간 침대 매트리스에 온열 기능이 있나 싶게 뜨거워진다. 이불을 걷어차고 다시 잠을 청해 자다 보면 또 추워진다. 다시 이불을 끌어다 덮는다. 이게 밤새 서너 번씩 반복되고 있다.
오늘 아이 진료를 봐주신 의사 선생님께 이런 증상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운동하세요! 힘들면 타이레놀 한알씩 드셔요"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와 같은 증상은 이미 예전에 지났다고 하면서 굳이 산부인과에 가서 호르몬 검사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끝날 때 돼서 끝나는 건데 뭐... 정 궁금하면 산부인과 가보셔요. 가면 호르몬제 처방해 주겠죠." 이렇게 시크하게 대답했다. 아는 동생은 "언니, 절대로 절대로 호르몬제 먹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산부인과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다.
아이와 나의 상태가 이러하니 나는 인간의 발달과정에 있어서의 자연스러운 변화, 특히나 호르몬이 하는 일에 대해 경이로움이 생긴다. 아이의 문제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침투로 인해 생긴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의 증상은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며 체온 조절 기능의 이상이 생긴 것이다. 체온 조절 기능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담당하며 이 기능의 중추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에스트로겐이 담당한다고 한다. 인체의 신비를, 호르몬의 신비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