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사람들
며칠 전 어떤 사람과 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있다. 내가 문학상담에 관심 있어서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말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쪽은 관심 없어요."
그 자리에서 딱히 반박할 필요를 느끼진 못했고, 자리를 파했는데 계속 이 말이 맴도는 것이다.
그러다 어제 유튜브에서 나태주 시인이 나와 인터뷰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골자는 이런 말이었다. "저는 엄청나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입니다. 아내를 만난 것도 '내가 사랑하는 나'를 아내가 사랑해 줬기 때문이고요. 글 쓰는 작가들이 대체로 자기애가 강해요."
글 쓰는 사람들이 정말 자기애가 강할까?
글 쓰는 행위는 자기표현의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인식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한 가치부여를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애를 요구한다. 글 쓰는 사람에게 건강한 자기애는 필수적인 동력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표가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가치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치유나 성장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내면을 정성껏 들여다보고 돌봐야 한다. 심지어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자기 비하식의 글조차도 그 기저에는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자기애가 잠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글쓰기든지 글쓰기는 자기를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기애가 있어서 글을 쓰는 걸까? 글을 써서 자기애가 생기는 걸까? 내 경험상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생각하게 되었고, 나를 사랑, 아니 그럭저럭 나를 견디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글에 대한 사랑이 먼저였다. 어떤 글을 보면 마음이 움직였고, 그 글을 쓴 작가를 흠모하기도 했고,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갖기도 했다.
문학에, 작가에 대한 나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동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이어서 그랬나 보다. 글 쓰는 사람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그러다가 나태주시인의 작가들은 다 자기애가 강하다는 고백을 듣고 나니 한 순간에 이해가 갔다.
글쓰기는 고독하고 내면을 파고드는 작업이다. 외부의 시선이나 현실적인 요청에서 자신을 분리시키고 오직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주제에만 몰입해야 한다.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는 전업 작가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글쓰기는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의 내면의 것을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수준의 자존감과 자기애는 필수 불가결하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아내라서 사랑한다는 고백은 참으로 작가적이고 인간적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자기애는 이처럼 필수 불가결한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가 외부(아내)로부터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다는 것,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창작의 동력이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작가로서 건강한 자기 확신과 자존감을 외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적인 만족감과 외적인 인정에 힘입어 자존감과 자기애가 건강한 수준을 넘어서 타인에게 오만함으로 보이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사람'의 평가를 듣는 건 바로 그 순간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말을 했던 그 사람이 내 눈에는 '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사람'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