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수잔나의 진단명은 경계성 인격 장애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생각했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친구 폴리가 격리실에 갇혀 있을 때, 수잔나와 리사는 격리실 복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분명 병원의 규정상 금지된 행동이었겠지만, 그녀들의 “Downtown”은 그 어떤 세레나데보다 아름다웠다. 갇혀 있던 폴리에게는 크나큰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었을 시간이었다. 순수한 인간성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병원의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징계하는 것을 보며 정상이란 것이 우리 사회가 혹은 제도가 만들어놓은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위로해주기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 칭찬받아야 마땅할 사랑스러운 행동이 아닌가? 이걸 징계한다고? 정말 미친 거 아니야? 규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가 정상인 것이다.
멜빈 박사와의 면담에서 수잔나는 자신을 'ambivalent'하다고 말했다. '반대 감정이 병존하는', 즉 '양가적'이란 뜻이다. 나는 때때로 나 자신에게서 양가적인 느낌이 든다. 자기 비하가 심하기도 하고, 자기애가 넘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공존하기도 한다. 자유를 원하기도 하면서, 안정을 추구한다. 혼자이고 싶기도 하고, 혼자는 외롭다. 대학원 생활은 힘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양가적인 감정은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 같다. 삶 자체가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기에 이런 양가적인 감정은 인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수잔나가 말한 ‘양가성’은 그녀의 내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공간 전체에 깔려 있는 공기처럼 느껴졌다. 규칙과 돌봄, 통제와 자유, 보호와 억압이 늘 공존하는 그곳에서 그녀들은 잠시나마 금지와 허용의 경계를 넘어섰다. 폴리를 향한 그 즉흥적인 연주는 어쩌면 병원이라는 제도의 틈새로 스며든 작은 자유였고, 그 자유는 모두를 인간답게 만드는 따뜻한 숨결이었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안정에 대한 욕구는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자연스러운 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 결국 삶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두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 때때로 양가적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