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지금 아파트 옥상인데..."
혹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보통의 사람들은 옥상에 올라갈 일도 없을뿐더러, 옥상에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아파트 생활만 20년이 넘게 하고 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갈 필요성 또는 그래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곳은 아파트 관리 기술자들의 영역, 혹은 조금 어둡고 침울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그날,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가을날 저녁, 울먹거리는 열한 살 아들의 전화 음성에 혼비백산했다. “엄마, 나 지금 아파트 옥상인데...” 친구와 노는 날이라며 신나서 집을 나섰던 아이가 해가 지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옥상이라니, 거길 왜 갔냐고, 몇 동 옥상이냐고, 친구는 같이 있냐고 나의 질문은 아무 여과 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는 뭔가 석연찮은 기색으로 주뼛주뼛 대답을 하는데 나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아이 전화기 너머로 성인 남자들의 음성이 들렸다.
나의 심장은 더 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의 목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누구와 있는 거야? 아저씨들 목소리 들리는데 누구야?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짧은 순간이었지만 온갖 끔찍한 장면들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아이는 더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가 옥상에 있는 거 CCTV로 보고 경비 아저씨들이 오신 거야.”
처음에는 겁에 질렸다가, 결국은 그 겁만큼의 크기의 화가 되었던 엄마의 음성에 지레 겁먹은 아이가 친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혼을 내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옥상에 올라가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그곳은 너희들이 놀 곳이 아니라는 것, 그곳에서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들을 찾을 도리가 없다는 것 등등 설명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옥상은 끔찍한 우범지대로 인식될 것 같았다. 친구와 그저 신나는 모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이들끼리 옥상을 드나드는 행위가 어른들에게 얼마나 등골 서늘하게 만드는 사건인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중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나의 잔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아이들은 어쩌다 옥상 탐험을 하게 된 걸까? 그날 낮 아이가 하교하는 길, 하필 우리 라인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었다. 우리와 같은 라인 26층에 사는 친구와 점검 중인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망연자실하고 있었을 때, 그 친구가 좋은 방법이 있다며 아이를 이끌고 옆 라인으로 갔다. 지난번 엘리베이터 고장 수리 중일 때 고층 주민들은 옆 라인을 이용해 옥상을 통해 다니라며 고층 주민들에게 옥상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처음으로 옥상에 발을 내디뎠다. 중층에 살던 아이에게는 옥상의 탁 트인 세상이 너무나 새로웠고, 그 놀라운 경험을 친한 친구와 함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과연 그 비밀번호가 다른 동에도 통할까? 이런 작은 호기심을 가지고 놀이터 근처 105동, 106동, 107동, 108동, 110동 옥상을 하나씩 섭렵하고 다니다가 경비실 CCTV에 딱 잡힌 것이다. 네 분의 경비 직원들이 이 아이들을 쫓아다녔다고 한다. CCTV로 확인하고 가보면 사라지고 없고, 옆 동으로 가보면 또 사라지고 없고... 옥상 숨바꼭질은 이렇게 계속되었다. 결국, 110동 옥상에서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옥상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난 경비 직원들은 이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 잘못이네. 옥상 비밀번호 바꿀 거니까 다시는 옥상 올라올 생각 하지 마라.”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곳으로 접근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의 비밀번호는 모든 동에 통했다. 각각의 동은 각각 다른 구조로 인해 비슷한 듯 다른 옥상 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내려다보이는 풍경 또한 다채로웠다. 어떤 동에서는 너른 도심이 펼쳐져 보였고, 어떤 동에서는 광교산이 굽이굽이 내려다보였다. 열한 살 아이들에게는 지루해질 대로 지루해진 놀이터와는 다르게 새롭고 강력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저녁을 먹고 저녁 일과를 보낸 후 불을 끄고 아이와 나란히 누웠다. 잠을 청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있잖아, 아까 옥상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어. 그리고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데 엄청 가까워 보여서 신기했어.” 아이는 옥상에서 본 풍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게 무섭게 몰아붙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옥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얘기들을 그렇게 열거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싶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 꼭 안아줬다. 늘, 이렇게 실수한다. 어떤 일에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는 결국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고, 어른의 말을 사용하고 만다. 어른의 잣대는 융통성이 없어서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의 경계가 분명하고, 옳지 않다 생각되면 가차 없이 꾸지람하고, 때론 어른의 말은 지나치게 잔인하기도 하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섭게 혼을 냈어야 했다는 생각과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기만 했어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여전히 충돌한다.
며칠 뒤, 그날 밤 아이가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고 마음이 또 아렸다.
“미안해. 너까지 혼나게 해서.”
“괜찮아.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 뭐.”
옥상에서 본 노을이 아무리 아름다웠더라도 또 가기는 절대 없기! 루프탑 카페가 노키즈존인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 이 글은 3년 전, 그러니까 작은 아이가 4학년 때 쓴 글이다. 지금은 어쩐지 어른들의 호들갑에 잔뜩 움츠러든 것 같은 중학생이 되었다. 더는 여기저기 탐험하거나 헤매고 다니지 않는다. 현재는 집돌이다. 물론 더 이상 엄마와 잠들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