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
- 낮별
영주 1975~1991
안채와 사랑채를 통하여
최초의 행복과 최초의 불행이
교차 상영되던 커다란 대들보,
아무리 달아나도 꿈의 좌표는
언제나 한옥 마당에 닻을 내린다.
길몽이거나 악몽이거나.
프로이트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녹번동 1995년
겨울나그네, 지하에 있던 카페는 눅눅했다.
지상의 햇살을 배급받지 못한 가난이
서로를 껴안으며 초조를 견디던 시절이었다.
다만, 창이 너른 지상이 그리웠다.
서초동 1996년
엘 문도(El Mundo), 전단지와 풍선을 받아 든 이들은
세계로 날아갔지만, 나는 뉴욕제과 앞 파라솔에 머물렀다.
젊은 날이 열정페이로 혹사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햇살만으로는 부족했다.
논현동, 인덕원 1996~2005
외환의 파도가 온 나라를 집어삼킬 때
글로벌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감옥 안에서 안전했다.
내 구원은 변기 뚜껑을 내린 화장실 칸,
그 많았던 울음의 대가는 사글세의 전세화.
확장되는 사세와 더해진 역할에 갇혀
거친 숨 내쉬다 마침내 탈옥을 결심했다.
수원 2006~2015
나의 작은 왕국을 세우리라.
한 칸이 두 칸이 되고, 두 칸이 세 칸이 되었다.
결국 육아라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바퀴는 헛돌았고 삐걱대기 시작했다.
폐업신고를 마치고 눈물을 흘렸다.
밥벌이의 해방에 흘린 기쁨의 눈물인지,
세워진 적 없는 왕국에 대한 슬픔의 눈물인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길고 길었던 나의 발버둥이여 안녕, 이라고 생각했다.
수원, 용인 2016~현재
안락은 누추한 제자리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키우는 줄 알았던 아이들은 저절로 크고 있었다.
발버둥이 다시 시작되었고,
어쩌다 보니 상담을 공부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시를 쓰고 있다.
또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태국 푸켓에 와 있다.
지난 수업은 비행 중이라 빠졌다.
뒤늦게 과제를 받아 짬짬이 시를 썼다.
혼자 있을 시간도, 공간도 찾기 힘들어 오래 걸렸다. 쓰던 노트북, 돋보기가 절실했다.
노마드 라이프는 글 쓰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 고정된 삶을 살았는지 반성중이다. 좀 더 유연해져야겠다.
촉진시는 칼 레고의 <좌회전>,
흘러 흘러 온 나의 삶을 <부유>라는 제목으로 써 보았다. 묻어 둔 기억들이 하나둘씩 무덤에서 살아 나오는 것 같았다. 제법 멀리 흘러 온 것 같았는데, 주위를 뱅뱅 맴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