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자기 객관화와 함께 사라진 버킷 리스트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도시에서도 20년간 광교산 언저리에 살았었다. 5년 전 이사 온 이 집도 광교산 자락 아래 위치해 있다. 25년을 광교산 정기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산의 정상인 시루봉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산책 코스 삼아 왕복 2시간 정도 숲을 거닐다 내려오는 게 전부였다. 정상을 오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산을 즐기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25년을 그랬는데, 일요일인 어제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남편과 중1 아들에게 오늘은 시루봉을 정복해 보자며 전의를 불태웠다. 아마도 온 가족이 한껏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못마땅했던 마음이 컸었나 싶지만, 못마땅한 날이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25년을 보내고 왜 하필 어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어제는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닐 수가 없다. 어쩐 일인지 두 사람도 반기를 들지 않고 선뜻 따라나서주었다.
간단하게 사과 하나와 자몽 반 개 손질해서 락앤락에 담고, 텀블러 두 개에 물을 챙기고, 식탁 위에 굴러다니던 먹다 남은 빵 두 개 집어넣고, 혹시나 몰라 견과류 두 봉지, 물티슈 한팩 이게 다였다. 세 사람이 아침만 대충 챙겨 먹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 집을 나서면서 정상을 정복하겠다며 챙긴 준비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는 걸 곧 온몸으로 실감했다. 몹시도 무더운 6월이었다.
초반 1시간 정도는 아주 좋았다. 그동안 하루 6km씩 탄천을 걸은 보람이 느껴졌다. 오르막길에서도 별로 힘들지 않고 성지바위, 맷돌바위, 키스바위(이건 내가 이름 붙인 바위)까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씩씩하게 올라갔다. 여기까지가 내가 가본 광교산이었다. 그러고 나서 처음 가본 길이 시작되었다. 죽음의 계단이 연속해서 나타났다. 그쯤 해서 다리 여기저기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족저근막염으로 인한 발바닥 상태, 마비와 통증이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혔다. 내심, '더는 못 갈 것 같은데', '그만 가자고 할까?', '내가 가자고 해놓고 그러면 엄마 체통이 말이 아니지' 이런 마음이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건, 남편과 아들이 아무렇지 않게 앞장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만 가자고 하면 진짜 사람 우스워지겠구나 싶어서 다리와 발이 아프다는 말 조차 하지 못했다. 맨 앞에 앞장서서 다람쥐처럼 뛰다 걷다를 반복하던 아들도 연거푸 나타나는 계단을 보고는 어느 순간 짜증을 잔뜩 내기 시작했다. "아, 또 계단이야?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거야?"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기에도 너무 늦은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정상에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정상을 앞둔 호젓한 벤치에 앉아 가져온 과일과 빵을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과, 자몽, 빵이었다. 물 맛은 어찌나 달디 단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아이에게 아껴 마시자, 내려갈 때도 마셔야 하니 타일렀지만 조절이 쉽지 않았다. 이미 물은 바닥이었다.
산을 잘 타는 분이 우리가 간 코스로 정상까지 딱 1시간 40분 걸렸다고 했다. 우리는 초짜이니까 두 시간을 예상했고, 정말 귀신같이 두 시간 만에 시루봉 정상에 올랐다. 정상이 해발 몇 미터 정도 될까? 1000은 안 되겠지? 800은 될까? 이런 대화를 하며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 표지석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582m였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안나푸르나 환상종주가 들어있다.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읽고 난 후부터였다. 그 책을 킥킥거리며 빠져 읽고 나서 '나도 언젠가는 이걸 꼭 해보리라, 히말라야의 대자연에 안겨보리라, 극한의 고통과 극한의 기쁨을 맛보리라'를 다짐했었다. 베시사하르(해발 820m)에서 시작해 쏘롱라패스(5416m)를 통과하여 나야풀(1070m)까지 보름 가량의 트레킹이었다. 시루봉을 등반하고 나서 나는 안나푸르나가 이 생에서는 가 볼 수 없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안나푸르나를 버킷리스트에 넣다니, 내가 이렇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인간이었구나 싶었다.
시루봉 정상에서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고프니 얼른 내려가서 밥 먹자는 남편의 성화에 아들과 나는 어떻게 올라온 정상인데 하며 쉽사리 발걸음을 떼놓지 못했다. 아들은 아예 벤치에 드러누웠다. "안 내려가면? 여기서 살 거야?" 잠깐은 살고 싶었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았기에.
오르막 길은 오르막이어서 힘들고, 내리막 길은 또 다른 의미로 힘들다. 발을 헛디디거나 하면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가 쉬워서 내내 아래를 바라보며 걸어야 한다. 아주 옛날, 한라산 백록담 등반을 하고 하산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턱을 다친 적이 있었던 나는 하산길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어젯밤 자려고 눈을 감고 누웠는데 눈앞에 돌과 나무뿌리가 엉켜있는 그 흙길이 계속 맴도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산길의 가장 큰 문제는 물이 한 방울도 없다는 것이었다. 땀이 머리에서부터 줄줄줄 흘러 몸의 모든 수분을 앗아가고 있는데 보충할 물 한 방울이 없으니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들의 본격적인 짜증이 시작되었다.
"물.... 무울..... 물이 필요해. 죽을 것 같아"
나도 필요해.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잖아. 얼른 내려가는 수밖에. 목이 타들어갈 것 같은 갈증과 함께 발의 통증도 더 심해졌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맨발로 걷기로 했다. 금세 통증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후드득후드득 나무 이파리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들리는데, 정작 몸에 떨어지는 비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거대한 숲이 우산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려가면 뭐 먹을래? 즐거운 대화를 하며 내려갔다. 일단 물. 물부터 마시고.
나는 시원한 소바, 남편도 소바, 아들은 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상그지꼴을 하고서 소바와 순댓국을 파는 동네 식당으로 달려가서 얼른 주문을 넣고 물을 들이켰다.
식당에서 주는 큰 물통, 그걸로 세 통을 마셨다. 낯이 익은 사장님이 빈 물통 세 개를 보면서 기가 막혀하며 웃었다. 그때는 별로 웃기지 않았는데, 밤에 큰 아들과 통화하며 그 얘길 하다가 나도 정신없이 웃었다. 1인 1 물통이라니...
나는 다시는 정상 같은 거 욕심 내지 않을 거라고 내심 다짐했는데,
남편과 아들은 집에 와서 씻고 나서는 말했다.
"다음에는 물이랑 먹을 거 충분히 싸가지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