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의 프렌치토스트

그토록 기대했었지만

by 낮별

큰 아이를 키우던 시절에는 시곗바늘이 정신없이 휙휙 돌아갔다. 하루도, 일주일도, 한 달도, 일 년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없었다. 초보 엄마의 삶과 맞벌이의 삶의 병행은 그렇게도 혹독했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 없이 나를 몰아치곤 했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니, 한 달에 하루라도 평일 하루를 나를 위해 아니, 아이를 위해 일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었다. 그리 큰 바람도 아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장이 직접 수업을 이끌어가는 작은 학원에서는 원장의 공백은 곧 수업의 공백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집에 있어 보는 것이 꿈이었다.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집, 햇살이 가득 들어찬 집에서 아이를 맞이해 보는 것. 더운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맞춤하게 시원해진 집에서, 추운 겨울에는 꽁꽁 언 볼을 따뜻한 내 두 손으로 어루만져주며 활짝 웃으며 아이를 맞이하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눈이나 비라도 내리면 우산을 가지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며 아이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며 나를 반기는 그 순간을 꿈꿨다. 그리고 계란과 우유를 섞어 풀어 식빵에 적셔 버터에 노릇하게 구워 달콤한 시럽을 뿌린 프렌치토스트를 예쁜 접시에 담아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엄마, 준서네 엄마가 계란 토스트를 만들어 예쁜 접시에 담아주셨는데 엄청 맛있었어. 나도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큰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와서 이렇게 말한 순간부터 오후 네 시의 프렌치토스트는 나의 작은 꿈이 되었다. 아이는 까맣게 잊었겠지만 그걸 한 번도 못 해준 엄마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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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하교와 동시에 학원을 전전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눈이나 비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맞거나 운이 좋으면 친절한 친구 엄마 덕을 봐야 했다. 해주지 못한 프렌치토스트에 대한 아쉬움이 미안함으로 남은 첫 육아 경험이었다.

열한 살 터울의 작은 아이가 생기고 나서 드디어 꿈꿔오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건 간에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목소리를 한 옥타브 올린다. 프렌치토스트부터 시작해 온갖 간식들을 제공해 줘도 아이의 반응은 감동은커녕 시큰둥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를 보고 다행스러움과 반가움의 미소를 지을 아이를 상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아이는 눈 맞으며 집에 갈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는데 뭐 하러 왔냐며 타박했다.

우리는 모두 살아보지 못한 삶을 동경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일하며 아이를 키울 때 마냥 아쉬웠던 평일 오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지금 내게 주어졌지만 그 시간에 감사할 줄을 모르고 지낸다. 아이 역시 눈이나 비를 흠뻑 맞고 하교하며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준 친구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할 일이 없으니 괜스레 투정을 부린다. 한때 오후 네 시의 프렌치토스트가 꿈이었던 아이와 일하는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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