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남편이 일찍 퇴근한 날엔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간다. 산책이라고 하기엔 파워워킹이므로 운동을 나간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이겠다. 같이 걷다 보면 이런저런 대화라는 걸 하게 되는데, 온종일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있던 날에는 이 시간만이 유일한 어른과의 대화 시간인 것이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대부분 내가 종알대고 남편은 묵묵히 듣고 있는 편이다. 내가 입을 다물면 우리 사이에는 바삐 움직이는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렇게 한동안을 걷다가, 내가 물었다.
"당신은 골프가 그렇게 좋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남편은 의아해하며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좋지. 재밌잖아. 당신이 책 읽으며 즐거운 것처럼 나는 골프 치며 즐거워."
"그건 좀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아니야, 나도 골프 치며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치는 거야."
그렇게 시작한 남편의 이야기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골프가 왜 좋은지, 자신에게는 남들보다 뛰어난 운동감각이 있어서 골프를 치면서 얼마나 자신의 효능감을 느끼는지 어린아이처럼 남편은 떠들어댔다.
그동안 남편은 할 얘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나와 나눌 이야기가 없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못 말리는 골프 애호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축구 동호회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공을 차더니 서른 즈음하여 골프를 독학으로 배웠다. 단 한 번도 프로의 코칭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자부심으로 어깨뽕이 터질 것 같다. 함께 골프 치는 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못 믿는다며.
이렇게 대단한 골프 애호가와 살고 있는 나는 골프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친구들이 내게 말하곤 한다.
"너는 골프를 일단 배워. 그러면 남편과의 관계, 노후 생활 전부 노 프라블럼이야."
머리로는 알겠다. 그런데 마음이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고, 음악 듣고 이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인데
골프는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돈도 돈이고.
어제 남편이 신나서 떠드는 걸 보면서 골프 이야기를 함께 몰입해서 나눌 수 없음이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나도 남편과 함께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만다.
같은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살아도
너와 나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다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한 배에서 나와 한 부모에게서 자란 형제들도 모두 다른 세상에서 살고,
내가 낳아놓은 내 아이들도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산다.
각자의 세상에서 살면서 때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면 그만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의 조카 니코는 엄마는 삼촌이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히라야마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