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이 보고 싶어서...
지난 토요일에는 장 그르니에의 "섬"과 함께 하는 책 모임이었다. 가벼운 에세이라 생각하고 펼쳐들은 "섬"은 사유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가 그랬다고 했고 나를 제외하고는 전원 완독조차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이 책을 강추하며 함께 읽자고 권했던 이는 바쁜 일에 치여 책을 펼쳐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나는 까뮈가 쓴 서문부터 역자의 말까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다 읽긴 했으나 완독 했다고 하기에는 이해하고 받아들인 부분이 적었다. 다만 꾹 참고 읽다 보면 자꾸만 나를 붙드는 문장들이 있었고, 어떤 장면은 소설의 아름다운 한 장면처럼 묘사되어 그런 장면들만 마음에 담아도 충분히 좋았다.
이 책을 다 읽었다는 나의 말에 책모임 동료들은 내가 지나치게 책임감이 높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 10년간 책모임을 하면서 완독을 못하고 간 적이 정말이지 몇 번 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책임감이 높다는 칭찬도 뭣도 아닌 야릇한 평가를 듣고 나니 예전에 보았던 미드 "위기의 주부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주부들)도 위스테리아 가의 이웃들과 독서 모임을 가진다. 주인공 격인 젊고 아름다운 '위기의 주부들'은 '위기'를 겪느라 삶이 너무나 버라이어티 하여 책을 읽을 여유나 시간이 없어서 선정 도서인 '마담 보바리'를 읽지 못하고 참여한다. 그 모임에서 나이가 많고 외모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평범한 아주머니만 완독을 하고 나와서는 책을 미처 읽지도 않고 나온 젊은 그녀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드라마에서는 그 나이 든 여자가 아주 꽉 막혀있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나는 타인과 함께하는 책 모임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선정된 책을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니 역시 나는 꽉 막힌 사람인가 보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일 수도 있다. 책을 완독은 아니더라도 읽으려고 애쓰고 나오기만 해도 괜찮은데 한 달 동안 펼쳐보지도 못했다는, 심지어 책을 구하지도 못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맥이 빠지곤 한다.
다들 책을 읽지들 않았으니 책 얘기는 거의 못했다. 나 혼자 몇 꼭지를 소환해서 읽고 감상을 나누기도 했으나 부질없다는 생각에 금세 관뒀다. 나중에 혼자 이 책을 다룬 팟캐스트를 찾아 들으며 북토크의 갈증을 해소했다. 자주 이런 식이지만, 그래도 책 모임을 십 년째 유지하는 것은 그 긴 시간이 꾸역꾸역 밀어주고 있어서이다. 이런 책모임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걸까를 고민한 세월이 십 년이다. 고민하다 보니 그 시간만큼 정도 쌓였다. 이제는 안 보면 보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는 말이다. 읽지도 않고도 나오는 걸 보면 다들 책은 핑계고 얼굴 보러 나오는 면이 큰 것 같다. 그래도 명색이 책 모임이니 책에 대한 관심과 읽고 싶은 의지는 책 모임에 얼씬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큰 사람들이다. 덕분에 모임이 아니라면 알지도 못했을 작가를 접하고, 읽지도 않았을 책을 읽는 우연한 즐거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꽉 막힌 캐릭터대로 열심히 완독하고 나갈 것이다. 어찌 됐건, 십 년을 유지한 장수 책 모임이다.